2502060608
아, 그런 느낌이 든다.
이제 끝이라고.
이제 더는 내 몸에 알코올을 들이지 않겠다고.
새로운 일은 아니다. 과음을 하고 두 번 중 한번은 이런 느낌이 들었고, 지금도 그런 상태다만, 클리어하기 어려운 게임의 같은 스테이지를 50번 실패했을 때보다, 500번 실패했을 때 그 다짐이 더 날카롭게 선명해지는 것처럼, 지금 이 다짐도 이전과는 다르다. 그래야만 하고.
내가 만약 취향도 맞지 않는 친구를 사귀는데, 그 친구를 만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지, 나는 돈을 좋아하는 거고, 그 친구는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이처럼 나는 언제나 취기를 좋아했을 뿐, 술을 좋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이유로든 취하기 위해서 그 메스껍고 맛없는 액체를 목구멍 뒤로 쏟으며, 약처럼 복용했다.
오랜 시간이었다. 처음 음주를 시작한 건, 끝을 앞뒀던 22살 겨울, 23살이 되기 며칠 전. 이래저래 안 해본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친구 중 하나다. 난 이 친구의 첫인상이 상당히 강렬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믿을 수 없이 쓴 맛과, 이게 정말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냐는 충격과 의문으로 쉽게 친해지진 못했다. 서로 맞지 않았지만, 그렇게 며칠, 몇 주를 지속적으로 만나다 보니, 나는 이 친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 노력에 대한 대가였는지, 이 친구는 나를 취기라는 새로운 세계로 초대해 줬다. 노력. 응, 난 음주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도 그랬듯이 병적으로 알코올의 일정량을, 내 할당량을 해치워야 했다.
언젠가부터 그 세계에 초대받지 못 한 날은 굉장히 아쉬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슬펐고 불안했기 때문에, 난 그 친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우리 서로가 받아들여지는 그 상태가 될 때까지 날 내어줬다. 어째 그 친구가 얄밉게 흔드는 그 세계로 가는 초대장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갔지만, 어쩌겠나, 더 마셔가며 그 거리를 좁히면 됐다.
내가 평생 마신 술자리의 99%는 혼술이다. 난 혼술의 개념이 따로 있던 것도 아니었고, 술이란 그저 수단이었다. 분위기도, 음식도, 대화도, 사람도, 뭣도 필요 없으니까, 취기 그거 하나만 당장 내놓으라며. 맛없는 술을 최대한 적게 마시기 위해서, 빈속부터 술을 마시고, 최대한 빨리 많이 마셨다. 예전 글에도 쓴 내용이지만 짧게 말하자면, 편의점에 들러서 20.1도 소주랑 딸기 우유를 사고 밖으로 나와, 딸기 우유로 쓴맛을 씻어 가며 소주를 세, 네 모금에 나눠 마신 뒤에 편의점으로 돌아가 공병값으로 100원을 받는 데 걸린 시간이 1분 내외였다.
난 오늘이 돼서도 술을 마시면서 그 맛을 즐긴다는 걸 이해하지 못 한다. 지난 7, 8년간 나름 다양한 술을 마셨고, 싼 것도 비싼 것도 마셨고, 술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땄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 취기를 즐긴다면 백번 이해하겠지만.
내 술자리의 1%에 대해서도 떠오르는 게 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은 일종의 티켓이다. 네가 간 곳에 나도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증명하는 것이다. 네가 취한만큼 나도 똑같이 취했으니 우리는 지금 같은 상태를 공유한다는 의미기도 했고, 내가 너보다 더 마시면서도 더 지혜롭고 점잖으니 내 정신력이 더 우월하지 않겠냐는 의미기도 했다.
생각 하나가 더 떠오른다. 술을 마시면 성격이 나빠진다거나 과격해진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술을 마시면 정신세계의 경계가 녹아버리면서 숨겨놓은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술을 마셔서 성격이 나빠졌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그냥 성격이 나빴던 거다.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무리 취해도, 성격이 나빠지지 않는다. 애초에 나쁜 성격을 갖고 있지 않으니, 취하고 취해도 쓰러져 잘 뿐, 성격이 변할 여지가 없다. 이 말의 증거 중 하나로 내가 있다. 내가 그러하니까.
다시 돌아와서, 딱히 이 친구와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굳이 노력하면서까지 이 친구를 피할 생각은 없다. 그저 앞으로는 노력하지 않아도 이 친구를 잊을 수 있고, 더는 그리울 것 같지 않기에 작별이 생각났을 뿐이다.
그동안 네가 초대해 준 세계가 참 좋았어,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그동안 내 세계도 참 많이 다채로워졌더라고. 어쩌면 네 세계보다 더 매력적일지도 모르겠어. 상황이나 때나 자리가 이끈다면 거기서 또 만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뭐, 잘 지내라. 이제 우리가 둘이서만 따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