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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91847

by ODD

저번에 이야기했던 여성 호르몬 주사와 성형 수술에 대해 이어서 이야기해 볼까요.



네.



지금도 계속해서 생각나세요?



지난 2주 동안은 계속 생각이 났지만, 지금은 많이 시들었어요. 제가 워낙에 관심을 두다가도 금방 질리고 새로운 걸 찾아서... 이번에 성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거의 2, 3년 만이었어요.



주제넘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잘하셨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성형수술도 그렇지만, 특히 여성 호르몬 주사 같은 경우, 남성이 맞게 됐을 때, 그 부작용이 상당하니까요. 그중에서도 남성으로서의 기능이나 정체성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사실, 제가 여성 호르몬 주사를 원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거긴 해요. 제가 중성이 되고 싶은 남성으로써 남성성을 버리는 거죠. 지난 10년도 넘게 시도해 왔지만, 여전히 이성애자 남성으로서의 본능은 여전히 존재해요. 계속 잘라내고 죽이면서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던 게 몇 년 전이었지만, 어느새 다시 살아날 때가 있어요. 지금은 다시 죽여놓았지만요.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는 본능까지 모조리 다 죽이고 싶어서, 저는 여성 호르몬을 맞고 싶어 하는 거예요.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있긴 해요. 아, 그런 게 생각이 났어요. 예시를 먼저 말씀드릴게요. 제가 예능 프로그램은 안 봅니다만, 오래전 집에 텔레비... 이건 별개의 이야기인데, 사용하는 단어에도 그 사람의 정보가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이제는 텔레비전이라고 안 하고 TV라고 하잖아요. 저번에 제가 일하는 곳에서 어떤 분이 이 제품 누가 선전한 거라고 했었는데, 선전이라는 단어도 굉장히 오랜만에 들었었죠. 요즘은 그냥 광고한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제 또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뀌고 있잖아요. 통화를 표현하는 제스쳐가 바뀐 것도 그렇고 미장원, 미용실, 헤어샵도 그렇고요. 전 제가 어느 세대의 사람인지 들키기 싫기 때문에 제가 사용할 단어를 선택할 때도 고민하고 신경을 쓰게 됩니다.


아무튼 TV가 켜져 있을 때, 지나가면서 본 장면이었어요. 예능인들이 번지점프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들이 한 명 한 명 점프대로 올라오면서 보여주는 서로 다른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중에 가장 겁먹었던 한 명과 가장 겁을 느끼지 않았던 한 명. 겁이 없던 그 사람은 보는 제 입장에서 별 감흥이 없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한 번에 휙 뛰어내렸거든요. 감정도 스토리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반면에 다리가 여러 번 풀리고 시도와 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그 사람도 결국 뛰어내렸는데, 그 사람이 제게 가장 흥미로웠죠. 아마 당사자에게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그 두 사람이 느낀 것을 비교하면 겁을 느끼고 이겨냈던 쪽이 더 풍부했을 것 같아요. 보는 입장에서도, 본인 입장을 상상했을 때도요.


그래서 저도 제가 원하는 데로, 정말 성에 대한 모든 것을 잃고, 느끼지 못하며 조금도 원하지 않게 됐을 때, 그 건조한 평화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들긴 하지만, 지금처럼 고민해서 신념을 갖고 노력해서 실천하는, 공포를 마주하고 고통을 느끼는 지금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까 말씀드린 그 번지점프대에서 겁먹은 그 사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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