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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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매주 상담이 시작될 때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질문은 지난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다.


대부분 어물 대답하며 좋다가 나쁘기를 반복한다는 게 내 단골 대답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오랜만이었다, 명쾌하게 엄청 잘 지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게.


난 크게 3가지 부문에 대해서 크게 만족해 있었다.


첫 번째 부문은 혼자 보내는 시간.


이전까지 오랜 기간 침체되어 있을 때는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영상을 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정신이 달라지더니, 몇 년 만에 디자인 프로그램을 결제하고, 로고 디자인을 다시 시작했다.


당연히 시작한 것만으로 만족할 순 없다. 스스로 평가했을 때 내가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느끼기 때문에 만족할 수 있었다.


이건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글을 쓸 때를 포함해서 내가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것이 충분히 가치 있고 귀한 것이라고 판단 된다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나 혼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이 신나 한다.


물론, 내가 스스로 인정할 정도의 결과물이라면 타인의 인정 역시 뒤따라 오긴 한다.


쉽게 집중할 수 없어서 게임도 못 하는 내가 디자인을 할 때면 적어도 2시간 30분은 사라졌다고 느낄 만큼 깊게 몰입한다.


보통 2시간 정도면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고, 어제는 8시간을 멈추지 않고 집중하여 4개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4개 중 2개는 그렇게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른 2개는 만족스러웠다.


요새는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이렇게 지내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 부문은 사회적인 노동력의 가치.


일주일만 지나면 내가 올리브영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2년이 된다.


그사이에 나는 올리브영에게 크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난 몰라보게 성장할 수 있었고, 깊게 감사함을 느낀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수 역시 많지만, 그보다도 매장에 입장하는 고객 수는 압도적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대면해야 하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있어서 이곳은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교육 및 치료 기관이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2년을 했다고 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질문 중 하나는 진상을 만난 적이 있느냐다.


매일 수백 명의 사람을 2년간 대면해도 진상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아, 이 사람 조금 엇나가면 진상이 되겠다.’ 싶은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내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싫은 소리를 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하는 진상은 한 명도 없었다.


난 이게 내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기분 좋게 대접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방법을 안다.


내 말투와 억양, 사용하는 단어, 숨을 쉬는 포인트, 손짓, 눈빛, 웃음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이 조합되어, 난 상대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어려운 고객이 있으면 내가 맡아서 상대하려 하고 실제로 성공한다.


이뿐만은 아니다. 6,000개 이상의 제품을 취급하는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로 2년을 해온 건 가볍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까다로울 결제 실수를 안 한 지는 1년이 다 되어가고, 그 이외의 많은 것들을 잘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수준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모든 걸 완벽하게 다 잘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못하는 것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올리브영이라는 이 집단에서 내가 발할 수 있는 가치와 그 가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아주 만족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부문은 인간관계.


이건 직장 내에서 동료와 동료로서 잘 지내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공적인 부분과 별개로, 사적으로 친구가 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친구가 생겼다.


한동안은 친구가 생기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내 성향인가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는지 내 방식의 방법을 익혔다.


작년에 사귄 친구는 더 이상 올리브영에서 같이 일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주기적으로 최근까지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고 놀았다.


그다음에 들어온 사람도 이전 사람처럼 친해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친구가 되고 있다.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없었지만,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는 있었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 없어서 이 정도로 마치겠다.


이전까지의 내 삶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친구를 통해 얻은 귀한 만족이었다.



그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최근의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잘 지내고 있는 내가 대견하고 기복이 심한 나는 언젠가 또 침체될 때가 있겠지만, 그 때 가서도 또 다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참 즐겁고 감사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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