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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들

2408220524

by ODD

여전히 약을 먹지 않으면 기절하지 않는 한 잘 수가 없다. 그래서 근무가 있는 전날은 약을 일찍 챙겨 먹고 일찍 자고 일어나는 착한 아이가 되고, 근무가 없는 전날은 해가 뜨고 나서 약을 먹는다. 이 말은 해가 뜨기 전까지의 새벽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스스로가 여럿인 만큼, 내가 사는 곳도 여러 곳이다.

개념적으로 말이다.

일단, 실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속.

그다음으로 내 의지랑 상관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초대되는 꿈속.

그리고 내 머릿속에 있는 내 정신적인 세계 속.


이 정신적인 세계는 인간인 내가 뿌리여서 그런지,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에 영향을 받는데, 그 기준 중에는 빛이 있다.

해가 떠 있을 때의 내 정신세계 속.

이곳에는 내 공상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상상의 강점을 더 높이 살려내는 건설적인 플래너가 있다.

밤이 떠 있을 때의 내 정신세계 속.

이곳에는 어떠한 근거나 이유도 없이 자유롭게 파고들고 확장하며 방황하는 플레이어가 있다.


난 밝은 낮 시간보단 어두운 밤 시간이 좋다. 아마도 빛이 있을 때는 뭐라도 보이니까 보이는 만큼 분산되는 것 같다. 그런 만큼 보이는 게 적은 밤과 새벽엔 뭔가에 집중하기 편하다. 그리고 새벽에 있다 보면 여기가 하루의 끝인지 시작인지 모르겠다. 그 둘이 중첩된 상태겠지.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이 시간을 보내는 데에 있어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늦게 자고 일어나는 나쁜 아이가 되더라도 새벽의 시간은 날 감각적인 아이로 성장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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