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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

2409260239

by ODD

인간 역시 하나의 현상이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바람이 부는 것처럼.

물이 흐를 때 흐름 속 물방울처럼.

바람이 불 때 흐름 속 공기처럼.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형성된 환경에 대해서 반응하는 생물이라는 현상이다.


우리는 물이 뜨겁다고도 차갑다고도 하지 않는다.

물은 경우에 따라서 뜨거울 수도, 차가울 수도 있다.

어쩌면 너무 뜨거워 증발되어 기체가 될 수도 너무 차가워 얼어버려 고체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나는, 자기 자신은 인간이라는 단위의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사고를 통해서 주체 의식을 가지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연의 세포이자 인류의 세포다.

세포도 원자도 정말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 움직임은 사실, 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그 움직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다.

우리가 부르는 자유의지란 움직임 역시 정말 빠르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우리, 생물이라는 존재가 묘하게 특별하다고 느껴지는 점 중 하나는 스스로가 살고 있는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분명 환경이라는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와 동시에 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끈에 연결된 꼭두각시 인형이 스스로 그 끈을 조종하는 느낌.


우리 또한, 환경에 따라서 뜨거워질 수도 있고, 차가워질 수도 있다.

환경에 따라서 유쾌한 존재가 될 수도, 불쾌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대상이 여럿이라면 동시에 유쾌하면서 불쾌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환경에 따라서 선인과 악인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이 둘 중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당신의 환경 탓이다.

다만, 그 환경은, 그 흐름은 너무나 복합적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발발된 시점과 이후 흐름의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탓이라는 게 주인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다.


그렇게 차가웠던 네가 결혼하고 오손도손 귀여운 부부가 될 줄 알았을까.

그렇게 성실하던 네가 이별을 겪고 방탕한 난봉꾼이 될 줄 알았을까.

그렇게 불평하던 네가 실패를 거듭하고도 전혀 변하지 않을 줄 알았을까.

그렇게 꿈이 크던 네가 성공을 느끼고 일상의 불감증을 얻어 폐인이 될 줄 알았을까.


너희들의 그 모든 변화들이 이루어질 때, 분명 너희는 자신만의 움직임이 있었을 거야.

걷기도 뛰기도 달리기도 날기도 아니면 그냥 누워있기도 하면서.

그런데 친구들아, 난 그 움직임에 의문이 들어.

너희의 그 움직임과 내 이 움직임이 정말로 얼마나 의미가 있었던 걸까.

이 의미를 부여하는 기준을 어디로 정해야 할까.

기준을 낮추기엔 우리의 가치가 희미해지고, 기준을 높이기엔 우리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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