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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카페에서 나온 마키스는 익숙하게 몇 걸음을 옮긴 뒤, 바닥을 바라보며 명령한다.
"엘고, 문 열어줘."
마키스의 말이 끝나자, 지면과 같은 높이에 위치해서 찾아내기 어려운 3겹의 특수 소재의 강철판이 상하, 좌우, 상하 순서로 열렸고, 그 아래 지하에서 성인 남성 약 13명 정도를 한 번에 태울 수 있을 크기의 엘리베이터 구조물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엘리베이터 구조물은 다시 지면으로 꺼졌고 3겹의 특수 소재 강철판이 역순차적으로 닫혔는데, 이 모든 과정은 부드러우며 소음 하나 없이 진행됐다. 지상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마키스는 지하 1층에 도착했고 정문의 여러 보안 시스템을 인증하며, 그 너머의 다른 엘리베이터로 갈아타 더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2층 연구실에 도착한 마키스는 왼쪽 귀에 걸려 있던 무선 이어폰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의자에 털썩 앉는다.
“엘고, 시뮬레이션 결과는 언..."
연구실 안의 모니터에 엘고가 나타나고, 이어서 대답한다.
"잠깐만, 마키스, 그전에 확인하지 않은 스마트폰 알림이 728개야. 계속 늘어가는데, 어떻게 할 거야?"
"다들 정말 고맙네."
마키스는 포장해 온 프라푸치노 3잔 중 2잔을 냉장고에 넣고 하나는 빨대를 꽂아 힘껏 빨아 마신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해야 할 게 산더미라서 따로 답장할 시간이 없어. 아, 잠깐만."
차가운 것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빨아들여서 머리가 아픈지 프라푸치노를 책상에 내려놓고 양손으로 옆통수를 꾹꾹 누른다.
"으, 아파라. 이전에 내 문장 완성 패턴을 분석해 놓은 거 있지? 그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자동으로 답장해 줘. 중요한 대화 내용은 따로 정리해서 나중에 알려주고."
"응, 먼저 연락이 온 순서대로 작업을 시작할게. 그리고 감마선 폭발에 대한 연구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거야?"
"일단 텔레스트 형이 보내준 데이터를 한 번 더 검토하고 분석한 뒤 생각해 보자, 형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정밀하게 해야 하니까."
"오케이, 그러면 H100 시뮬레이션의 결과까지 나온 뒤 결정하는 걸로."
H100 시뮬레이션은 팀 파렐이 보유한 모든 데이터를 적용하여 최대 100억 명의 인류를 실험 대상으로 여러 가상 시뮬레이션을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H100 시뮬레이션을 포함해서 아르티아 연구소의 시뮬레이션들 대부분은 인간이 다루기에 프로그램이 너무 복잡하고 방대하며 섬세하기 때문에 팀 파렐 이외에는 제작은 물론, 조작 및 관리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며 심지어 팀 파렐을 제작한 마키스조차 다룰 수 없다.
"그럼, 시뮬레이션 결과는 언제 나와?"
세상은 정보가 전부이며 데이터가 전부다.
"6분 24초 후에 결과값을 알 수 있어."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운이라는 요소가 존재하는데, 반대로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다뤄낼 수만 있다면 운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동안 잠깐 생각 좀 할게. 분 단위로 알려줘."
팀 파렐의 예측에는 행운도 불운도 존재하지 않는다.
"5분."
그저 미래의 사실만 존재할 뿐이다.
"4분."
AI 중에서도 최상위급의 연산 처리 속도와 연산량을 보유한 팀 파렐의 해킹 수준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며, 인터넷으로 접근 가능한 데이터라는 말은 곧 팀 파렐의 데이터라는 뜻이다.
"3분."
시뮬레이션 결과를 기다리며, 마키스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감마선 폭발이 지구에 직격했을 때, 직격당하는 반구 형태의 중심지는 어디인지. 직격 후 인간의 신체 능력으로 몇 %의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지. 시간 경과에 따라 줄어드는 생존율과 인류의 생존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한계점은 언제인지. 생존한 인류는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와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모든 계산을 통해 재앙 발생 전후로, 언제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아내어, 문명을 지키고 이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생각에 삼켜져 갈 때쯤, 엘고가 마키스의 생각을 끊고 끄집어낸다.
"마키스, 마키스!"
"어어, 왜?"
"H100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고."
"아아, 바로 브리핑해 줘."
시뮬레이션 결과와 연관된 자료들을 모니터에 띄우며 엘고가 브리핑을 시작한다.
"텔레스트의 주장은 옳아. 현재로부터 약 10개월 2일 후에, 약 1,327광년 거리에서 발생할 감마선 폭발은 분명히 지구에 도달하고, 도달한 순간 광선의 지름은 약 83광년이야."
마키스가 의아해하며 질문을 던진다.
"1,327광년? 내가 잘 모르긴 하지만, 그 정도 거리라면 이번에 새로 올린 우주 망원경이 아니더라도 관측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맞아."
"그럼, 왜 이번이 돼서야 감마선 폭발을 관측할 수 있게 된 거야?"
"제대로 봤네, 단순히 관측 거리로만 따지자면 기존의 우주 망원경으로도 관측 가능했던 거리였지만, 이번에 중요했던 것은 관측 거리가 아닌 해석력의 차이. 이번에 올린 우주 망원경의 분해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전에는 관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데이터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게 된 거지."
책상에 턱을 괴고 있었던 마키스는 머리를 치켜세운다.
"와, 만약 이번에 올렸던 우주 망원경의 분해능이 또 부족했다면 여전히 감마선 폭발을 모르고 있었겠네?"
"아마도 그랬겠지."
치켜세웠던 머리를 다시 뒤로 빼며 의자의 등받이를 눕힌다. 기분이 미묘했다. 미리 알게 되어 천만다행이지만, 최악의 불행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몰랐던 게 더...'
엘고가 브리핑을 이어서 진행한다.
"감마선 폭발을 직접적으로 맞게 될 반구의 중심지는 83° 55' 34''S 40° 39" 03""W, 남극.
광선이 지구에 도달하자마자 겪게 되는 가장 큰 변화는 지구의 대기권, 오존층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 현재 지구 지면에 있는 인간은 태양의 에너지를 약 2%만 받고 있지만, 오존층이 파괴된 후에는 받아낼 태양의 에너지가 약 93% 이상으로 대폭 증가할 거야. 93%의 에너지면, 직접 노출된 인간의 피부는 몇 초 만에 타버리겠지."
엘고가 참고 자료로 띄워놓은 태양 빛에 익어가는 인간의 시뮬레이션 영상과 소리의 묘사는 마키스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오존층의 적절한 여과 없이는, 태양 에너지의 자외선과 X선, 감마선 등 대부분의 것들이 지구에 현존하는 생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게 돼. 남극 중심의 반구 형태에 위치한 직접적 영향권의 인간은 너무 밝은 빛으로 인해서 대부분은 즉시 영구 실명하게 될 것이며, 광선이 지구를 통과하는 데 약 2.434초가 소요되니, 순식간에 지구 전역은 방사능 지대가 될 테고, 모든 곳의 생물은 방사능 중독을 겪게 될 거야."
"그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사형 선고가 확정된 거야?"
"뭐, 아무런 대비 없이 노출되어 있다면 그렇겠지만 예외로 두께 약 13.7cm 이상의 순수한 납으로 된 감마선 차폐벽 내부에 있거나, 지하 약 1.319km보다 아래에 있거나, 수심 약 1.792km보다 아래에 있다면 괜찮아."
"쉽지 않네."
"그렇지 않은 모든 생물은 감마선의 영향을 받아서, 세포가 파괴되고 DNA가 무너지는 고통을 느끼며 개인차에 따라 며칠에서 몇 개월 내로 죽겠지. 물론 즉사하는 경우도 있을 거고."
마키스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모든 변압기들이 폭발해 버리면서 전기는 사용할 수 없게 돼. 따라서 냉장 보관과 냉동 보관이 필요한 모든 식량들을 서서히 잃게 되며, 전력을 공급할 수 없으니, 펌프의 가동도 멈춰서 물 역시 공급하기 힘들어져."
"그럼 냉장 및 냉동 보관할 필요가 없는 보존식을 확보하면 괜찮지?"
"당연히 도움이 되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 정도의 감마선 폭발이 일어나면 방사성 동위원소나 활성 동위원소가 방사선에 노출된 음식에도 생성되기 때문에 그나마 남은 음식들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음식들을 먹는 것은 표류 중인 바다에서 바닷물을 마시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 되겠지."
"식량도 방사선에 노출되지 않게 해야 하는 거네."
"응,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하나 더 남아있는데 첫 번째 감마선 폭발 이후 약 4년 9개월 뒤에 두 번째 감마선 폭발의 여파가 있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두 번째라니?"
"감마선 폭발이 일어나면 감마선과 함께 하전 입자들도 생성되는데, 감마선보다 속도가 훨씬 더 느리거든, 그래서 고에너지 입자들로 이루어진 감마선 폭발이 2차로 올 거라는 거야. 확인 사살도 아니고 말이야... 따라서 그 시점까지 어렵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번 더 충격이 가해져."
마키스는 보기 싫은 상황을 상상해 낸 듯, 눈을 감아버렸다.
"첫 번째 감마선 폭발의 충격으로 태양계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서, 지구에 두 번째 감마선 폭발의 충격이 가해질 때의 중심지를 예측할 수는 없었어. 어쩌면 그때는, 지구 자체가 지금과는 다른..."
엘고가 마키스의 반응을 살핀다.
"괜찮아? 브리핑... 잠시 멈출까?"
메스꺼움을 숨기려는지 마키스는 즉답한다.
"아냐, 아냐, 괜찮아. 계속 부탁해."
"응... 그나마 희망적으로 말하자면 지구의 곡면으로 인해서 북극점으로 갈수록 감마선 에너지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아, 북반구는 이번 재앙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위치라고 볼 수 있어. 다만, 북극은 남극과 달리 대륙이 아닌 빙하잖아. 거점으로 삼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 북국의 주변국을 찾아보면... 뭐, 큼직한 건 아헤일라(Akheyla), 다낙(Danac)의 북쪽, 날노르그(Nalnorg) 그리고 사테파르(Satepar) 정도가 있네."
"우리 연구소는 감마선 차폐 정도는 문제없긴 한데, 여기 에어로크(Aerok)는 어때?"
"북극의 주변국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광선을 직격으로 맞는 반구에서는 벗어났기 때문에, 최악은 아닌 정도? 그래서 이 부분을 보면..."
이후 마키스는 엘고에게 몇 시간의 브리핑을 더 자세히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