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5

5

by ODD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가.

마키스는 정착하기보단 어디론가 떠나고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고,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왔던 터라, 부모님의 풍족한 경제적 지원으로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로 여행을 다녔었다.

그에게 그의 첫 여행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좋은 의미로써 충격. 사람과 언어부터 시작해 생활, 환경, 문화 등 모든 시스템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에 만족했던 그는 두 번째, 세 번째의 추가적인 여행을 떠나며 정신과 사고방식이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에는 한계가 존재하고 끝 역시 존재한다. 그의 여행 또한 그러했다. 어느덧 해외로 여행을 떠난 횟수가 109번이 되었고, 전쟁 중인 나라를 제외하고는 지구 한 바퀴를 돌게 됐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된 마키스는 그 후로 새로운 장소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를 가든 이미 머릿속에 들어있는 확장된 사고방식 내에서의 사건들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가 '새로움'이라는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현실에 실존하는 것들이 아닌 그 이상의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인 여행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정신적인 여행으로 도달하려 한다. 지금 그에게는 전 세계 여느 곳의 여행보다도 그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더 풍부한 여행이 된다. 이것이 마키스가 자신만의 정신적 세계에서 살게 된 이유 중 하나고,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계속해서 깊게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다.

알비가 브리핑을 끝낸 후, 마키스가 프롭에게 물어본다.

"프롭, 잠깐만... 혹시 인간 사회의 특성과 인간의 특성을 고려하면, 아까 그 지하 도시 계획으로 생존시킬 수 있는 18억 명 중에 종말 이후 1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야?

"약 68%"

"6개월 이상은?"

"약 21%"

"1년 이상은?"

"약, 1.9%"

"2년 이상은?"

"약... 0.006%."

"음... 알겠어, 고마워."

마키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뒤로 돌아 책상으로 가는데.

'어?'

공포가 심장을 마구 밟아대는 듯, 마키스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세계 최고라 불리는 AI에게서 2년밖에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약 100억 명의 인류가 약 6,00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될 거라는 말을 듣는 게 이렇게까지 무서운 줄은 몰랐다.

마키스는 급한 대로 가까운 소파를 찾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던진 후, 아까 했던 생각을 되짚어 본다.

알비가 회의를 이끄는 동안, 엘고가 시뮬레이션들과 아르티아 연구소를 관리하는 동안, 그 뒤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지켜보며 했던 여러 생각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상대적 안전 지역인 북극과 주변국들을 점거하려고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아니, 절대로 일어날 거야. 텔레스트 형 말대로, 역시 타국에 공표할 수는 없어, 토파이오도 마찬가지... 정보력이 높은 국가라면 스파이를 통해서 알아낼 거야.

그럼, 토지 사용 허가 요청의 사유를 뭐라고 해야 하지? 그 나라에서 허가받을 수 있는 토지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까? 수용 인원을 최대한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존자를 어떤 기준으로 선별해야 할까? 초기에 분쟁이 없도록 일단 한 인종으로만 선별할까? 어느 인종이 적합하지? 유전자의 다양성이 중요하긴 한데, 하지만 다인종이면 분명히 마찰이... 적합한 사람들을 물색하면서 이런 기밀 사항이 유출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정보를 은폐한 게 들통나면 아르티아 연구소는 사라지고, 나는 네마에서 제명됨과 동시에 범죄자로 낙인찍힐 텐데. 뭐, 종말 직전인데, 상관없으려나. 하아... 결국, 지하 도시도 유전자 조작도 부족해.'

이후, 마키스의 끊임없는 생각과 팀 파렐의 계속되는 계산이 이어짐에도, 마키스가 만족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찾기 위해서 깊이, 더 깊이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만족이라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문명.'

마키스가 집착하는 것은 단순히 얼마나 많은 인류를 생존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닌, 그 이후에 이어질 인류의 문명이기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나온 모든 제안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포가 좀 가셨는지,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운 마키스는 소파 밖으로 삐져나온 다리를 흔들거리며 프롭에게 물어본다.

"프롭, 이대로라면 문명은 분명히 후퇴하겠지?"

"응, 높은 확률로 후퇴할 수도 있고, 낮은 확률로 사라질 수도 있어."

그는 과학, 기술, 의학, 예술 등 모든 분야를 단순히 정보와 데이터 형태로만 남기는 것이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아픔과 슬픔, 실수와 실패, 과오로 얼룩진 부끄러운 역사까지 모두 포함된,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류의 연속성, 문명 그 자체를 지키고 이어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문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해?"

"문명을 만들어 가는 존재는 인류이니, 우선 인류를 지켜야겠지?"

그리고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감마선 폭발의 영향으로 받게 될 문명의 손상이, 손상 이전 수준으로 복구하기 위해선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 되거나, 어쩌면 복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리라 예측되는 점이고, 지금까지 문명을 이끌며 인류의 도움이 되는 것을 가장 큰 목표이자 만족으로 살아온 마키스에게 이런 상황은 죽음보다 더한 끔찍함이기에, 그는 지금 공포와 슬픔에 잠겨있는 것이다.

"도저히 인류를 지킬 수 없다면?"

"그런 걱정은 조금 미뤄둬, 우리는 꼭 방법을 찾아낼 거야."

무너진 문명의 잔해 속에서 목숨만을 연명하며, 생존에만 만족해하며 살아갈 자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문명을 만들어 가는 존재는 인류다?'

그러다가 문득 리타가 했던 말들 중 하나가 떠오른다.

'인류가 꼭 너희여야만 하는 거야?'

소파에 파묻혀 있던 마키스가 벌떡 일어난다.

아, 그렇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가 꼭 우리, 현재의 인류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기존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틀에서 벗어나는 변화가 필요하다.

'문명을 만들어 가는 인류가 꼭 우리, 현 인류가 아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추락하기 직전인 현 인류가 집착하고 놓치지 않으려 할수록 문명도 같이 곤두박질칠 것이기에, 마키스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문명을 다른 존재에게 계승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마키스의 기연미연한 머릿속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와, 팀 파렐을 향해 넌지시 외친다.

"혹... 시 너희가 인류의 정신적 계승을... 받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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