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에 대해서 아시나요?

by 감성소년


오늘의 주인공은 김복동 할머니입니다!


1월 28일은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신지 3주기인 날인데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고결한 생애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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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성 노예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위하여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중일전쟁 및 아시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 정신대·군 위안부·종군위안부·성 노예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군 '위안부'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日本軍慰安婦]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 생애



1926년 5월 1일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출생하여 양산 보통학교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이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청년층에 대한 징용, 징병이 대대적으로 감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는 젊은 처녀들은 위안부 성 노예로 강제 징집하였는데요.... 열다섯 살에 동네 구장과 반장, 일본인에게 속아서 공장 노동으로 알고 '위안부 성 노예'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때 할머니를 강제로 끌고 간 인간들은 만약 따라오지 않는다면 '재산을 몰수하고 강제로 추방할 것'이라며 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공장이 아닌 일본군 위안부 성 노예 시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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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14살에 일본군을 처음 상대해야 했죠.... 그리고 할머니는 위에서 소녀 2분이랑 자살을 기도하려다가 10일 만에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위안부 성 노예'로 대만, 광둥 성을 거쳐 홍콩, 싱가포르,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자바 섬,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이동하면서 그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셨다고 하네요. 그러다 싱가포르 지역에서 일본이 패망을 하게 되었고 미군에 의해서 극적으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이때 구조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하네요. 일본군은 실제로 패망하기 직전에 자신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은닉하기 위해서 위안부 성 노예 할머니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요.....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다행히 살아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부산으로 돌아오셨고 결혼 생활을 하셨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1992년에 피해자임을 밝히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었고요.


201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김원옥과 함께 나비기금을 출범하셨습니다 그리고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대장암으로 별세하셨다고 하네요..



여담으로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과 2015년에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하자 이에 대해서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를 크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정부가 직접 석고대죄를 하기 전에는 어떠한 얘기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대충대충 처리할 바에는 때려치우라고'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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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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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넷플릭스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김복동>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여성인권 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해 오신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를 받기 위해 투쟁해 온 27년여 간이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90세가 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돌며 일본 정부로부터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셨죠.


암 투병 중이심에도 외교부 앞에서 '화해, 치유 재단 즉각 해산'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기도 해 이목을 끌기도 하셨습니다. 그 밖에 전 재산으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만들어 전해주신 내용까지 있으니 시간 있으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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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 생각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신지 3주기가 지났습니다. 여전히 일본에서는 위안부가 역사의 날조라 주장하고 있으며 공창제라 주장하고 있는 극우 인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만이 아닙니다. 국내에 있는 '자유연대'란 보수(보수를 가장한 수구) 단체는 김복동 할머니 3주기를 앞두고 이뤄진 수요 시위에서 소녀상을 선점하고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다'란 망언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0003123690%EF%BC%BF002%EF%BC%BF20220119152901263.jpg?type=w1 자유연대 및 엄마 부대의 시위 현장


국내 안에서도 공창제를 주장하는 금수같은 인간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지난 해엔 하버드대 출신의 램지어가 일본군 공창제를 뒷받침하는 논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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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이러한데 문제는 현재 위안부 생존 피해자분이 20명도 남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한국사 강사는 '역사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사라지면 날조된다'란 말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이토록 날조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이 만약 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면 얼마나 더 날조하고 파렴치한 행위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면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할 본분을 가진 저로서는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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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더욱더 이 김복동 할머님의 의로운 행동들에 대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4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서 모진 학대를 당하시고, 그것에 대한 배상을 받기 위해 90세가 넘으시도록 전 세계 각지에서 일본의 만행을 알린 할머님. 그리고 그 남은 재산까지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셨던 할머님의 고결한 정신에 대해서 기념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출처:


http://naver.me/FYAPf08L

%22https://imgnews.pstatic.net/image/001/2022/01/26/PYH2022012611590001300_P4_20220126151613754.jpg%22&type=ff500_300"



김복동 3주기 앞두고…소녀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수요시위

인권위 긴급구제조치 권후 후에도 보수단체에 장소 계속 선점당해 (서울=연합뉴스) 조다운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1926∼2019) 할머니의 3주기를 앞둔 26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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