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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소년 Mar 15. 2022

오늘의 역사는?3월15일(315의거)


오늘의 역사는 무엇일까요?

바로!

315의거입니다!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한 315 의거에 대해서 알아보시죠!









1. 배경



3월 15일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표장에는 수상한 움직임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투표함에는 투표 용지가 가득차 있고..


비밀 투표의 원칙이었지만, 3인조로 조직되어 서로 자유당을 뽑는지 안뽑는지 감시를 하게 하고


조폭이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315부정선거


이에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부정선거 현장을 확인했고


10시 30분에 선거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시위를 준비합니다.



저녁 7시 30분 하나 둘씩 사람들이 민주당 마산시당사 앞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 간부와 시민, 학생으로 이뤄진 시위대가 행진함에 따라 수천 명이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정남규 등 당 간부들을 연행하면서 강력히 대응하자 시위군중은 늘어나


밤8시경에는 만여 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315의거

이때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 중 정전되자 경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합니다


이에 시위대는 짱돌을 던지며 맞응수를 하죠


점점 시위 현장은 유혈사태로 번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날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2. 그리고 얼마 후....



그리고 얼마 후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마산상업고등학생 김주열군이 실종된지 약 1달여만에 발견이 된 것입니다

바로 죽은 체로 말입니다...

그의 시신은 근데 더 끔찍했습니다.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입니다

이에 시위는 급격하게 확대가 되고 전국적 시위로 확대가 됩니다.




3. 이승만의 대응



이승만은 마산 시위가 공산당이 사주해서 벌어진 일인 양 주장을하기 시작합니다.

부통령인 이기붕의 말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기자 회견 자리에서 마산시민들에게 왜 강경 대응을 했는지 묻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총을 줄 때는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








4. 이승만의 하야



이후 미흡한 이승만 정부의 대응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부산일보'를 통해 확인한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시위는 혁명으로 확대되게 됩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4월 18일 정오에 총궐기 선언문을 발표한 후 세종로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대학 총장의 만류로 4시쯤 데모를 중단하고 돌아가려하는데, 임화수등 폭력배들로부터 기자 및 학생들이 피습된 4.18 피습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대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4월 19일부터 정부는 서울 및 부산, 대구 대전등의 주요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419혁명


시위대의 시위와 진압대의 진압과정에서 약 6, 000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나오는 등 엄청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에 4.25일 대학 교수단이 데모를 하게 됩니다.



이에 주한 미국 대사인 매카나기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하야할 것을 설득하였고, 허정 외무부장관, 권승렬 법무부장관도 하야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이승만은 '국민이 원하면'이란 말을 남기며 4월 26일 하야를 결정합니다



5. 의의



4.19혁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혁명이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이뤄진 정말 민주적인 절차와 민주적인 의식을 갖춘 시민혁명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승만 독재 정부의 막을 내리게 했으며, 부정선거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잠재적 독재자에게

똑똑히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 후 민주당 내 신파 구파간의 계파 갈등이 발생하여 제대로 개혁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 곳곳에서 많은 요구가 일어나자 이를 위기로 인식한 박정희가 516정변을 일으킴으로써 4.19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습니다.




6. 글을 마무리하며



3.15일은 부정선거가 있었던 날이자, 의로운 마산시민들의 의거가 있었던 날입니다. 부당한 일에대해서 바로 저항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용기가 있었기에 지금도 이렇게 우리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시스템이 유지되는지 모릅니다.


현재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지금의 과정에 어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라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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