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갬성입니다!
오늘은 4월 15일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바로!
제암리 학살입니다! 민간인 학살의 최초의 시류라고 할 수 있는 제암리 학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919년 3.1일! 일제의 강한 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으로 지칠대로 지친 민중들에게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한 줄기 빛과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많은 민족운동가들이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독립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실제로 우리나라의 독립의지를 열강들에게 보이기 위해 3.1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3.1운동!
민중들은 거의 지도부없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무폭력 운동으로 일관하다가
농촌단계에 이르면 점차 폭력상태로 가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제는 시종일관 폭력적인 과잉진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오늘의 제암리 사건입니다!
제암리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일제에서는 갑자기 대표단과 협상을 하고 싶다고 통보하며
15세 이상의 남성들을 제암리 교회로 오게끔 했습니다.
대표단이 하나 둘씩 모이게 되었고, 그 들은 계속 기대렸습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이 들은 오지 않고 갑자기 교회 주변에서 불이 지펴집니다.
그리고 이 들은 '당했다'라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들중 일부가 자신의 자식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일제에 애원했으나 결국 아들마저 총살당하고 맙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약 30명.
규모가 다른 것보다 작다. 그러므로 홀러코스트가 될 수 없다. 라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3.1운동 전체로 본다면 이러한 형식의 대학살이 자행된 것은 3.1운동기간 중 굉장히 일반
적인 흐름이었기에 저는 인족학살, 홀러코스트라 봅니다.
더군다나 이어서 1921년의 관동대지진에 대한 보복으로 조선인을 학살한 것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양상은 분명 당시 일본이 홀러코스트적 양상이 아주 다분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이 시기는 그래도 일본에서 가장 민주적이라 말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입니다.
그러니 과연 무단 통치시기는 얼마나 끔찍 했을까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수도에서 러시아군이 자행한 인종학살이 공개되었습니다.
약 1300명에 가까운 아무 죄없는 민간인을 학살한 잔학무도한 러시아군.
보통 이러한 형태의 보복형 홀러코스트는 전쟁 중에 상대군의 사기를 떨어놓기 위해 전개하는
심리전인데요. 사실 이러한 심리전 또한 중세적 심리전이라 2차대전이후 거의 쓰지 않는
야만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광기에 사로잡혀 결국 시행하였고, 죄없는 무고한 백성들이
죽은 것을 보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전쟁 의지만 더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홀러코스트가 일어났었던 곳입니다.
3.1운동 시기는 물론이거니와 간도 참변, 관동 대학살, 그리고 2차대전중 일제가 강제 징용, 징병,
끌고간 위안부 성노예까지 그 들은 전쟁터에서 학살당했습니다. 그저 조선인이란 이유로.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4.3항쟁 중에 억울하게 서북청년단에게 학살당한 민간인들.
박정희 정부시기, 단지 유신헌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납치되고 고문받던 민주투사들.
전두환 시기의 광주의 시민들. 모두 홀러코스트의 피해자입니다.
이 토록 홀러코스트는 특정 인물에 대한 혐오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인간들의
역겨운 정치 수법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베와 같은 인간들, 메갈리아와 워마드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이 것을 '좌표'라는 형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말의 죄책감도 갖지 않고 진행을 하죠...
이런 것들 모두 시대 흐름을 잘못탈 경우 홀러코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특정 인종, 성별, 사람들을 싫어하십니까? 만약 그것이 싫다면 왜싫은지요?
이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할 시 당신은 특정 성별, 지역, 인종을 싫어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묻는 이유는 어떤 것에 대한 특정 혐오 감정이 이유가 없이 선동에의해서 만들어졌을때,
우리가 쉽게 선동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