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탈출 #탈옥 #900일 #현상금5000만원 #부산교도소 #신창원검거 #꼬리에꼬리를무는이야기
반갑습니다! 갬성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신창원 검거입니다!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신창원에게는 지독한 가난도 고통이었지만,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요.
아버지 역시 부인을 잃은 슬픔으로 도박과 술에 빠져 지냈지만 얼마 후 새 어머니를 들입니다. 새어머니는 아들이 있었는데 신창원과 차별대우를 했다고 하는데요. 이에 화가난 신창원이 칼을 잡고 계모를 내쫓았따다고 하네요.
신창원은 남양국민학교 5학년 때 선생으로부터 "XX야, 돈 안 가져왔는데 뭐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라는 말을 듣고 상처가 된 것이 범죄자가 된 계기라고 합니다. 본인의 표현이 '그때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악마가 태어났다'. 는 말을 했지요 이후부터 신창원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출을 시작했었으며, 결국 중학교에 진학한 지 3달 만에 퇴학당하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것이 14살때 입니다. 이 때 신창원은 도둑질을 하였는데요. 신창원의 아버지는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답시고, 경찰관들도 훈방 조치한 신창원을 굳이 다시 끌고 와서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을 하여 잡아넣었습니다.
소년원에 다녀온 후부터 그의 범죄는 대담해졌으며, 1989년 고향 선후배 4명과 모의하여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그 중 주범 깅양훈에의해 피해자가 살해되게 됩니다. 이 것으로 강도살인죄 판결을 받아 경북북부제 2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됩니다.
탈옥
신창원은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다 1997년 1월 탈옥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탈옥을 위한 준비과정을 보면 놀라울 따름인데요... 노역 작업 도중 손에 넣은 작은 실톱날 조각으로 하루 20분씩 무려 2개월간 들키지 않도록 화장실 쇠창살을 몰래 조금씩 그어 마침내 지름 1.5cm의 쇠창살 2개를 끊었고, 감방을 빠져나와서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끊은 쇠창살로 20m 가량 떨어진 교도소 내 교회 신축공사장 철담장 밑의 언 땅을 폭 53cm 깊이 20cm 가량 파내어 공사장으로 들어간 후, 공사장에서 주운 밧줄을 타고 외부로 통하는 공사장 펜스를 넘어 교도소를 빠져나갔습니다.
빠져나가는 데에는 1시간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사전에 동료 죄수들을 포섭했다거나 심지어 교도소의 묵인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설이 제기될 정도로 신출귀몰한 탈출이었습니다. 이 탈옥을 위해 좁은 곳을 지나가기 쉽도록 15kg를 감량하였고, 신뢰를 쌓아 감시를 줄이기 위해 오랜기간 모범수로 지냈다고 합니다. 교도소를 빠져 나간 신창원은 500m 떨어진 화훼 농가로 침입하여 옷을 훔쳐 입고 자전거를 훔쳐 4km를 달려 구포사거리까지 간 뒤, 택시를 타고 서울로 잠입했습니다.
그 뒤 2년 6개월간 4만여km 거리의 도주를 계속하였으며, 도주를 다니는 동안 빈집들을 털며 훔친 현금으로 생활했고 이동도 훔친 차를 활용했다. 그렇게 도망다니는 동안 잡힐 듯 하면서도 체포 직전에 경찰관들 추격을 따돌린 것만 무려 6번이었습니다. 연 97만 여명의 경찰이 동원되었고, 전국 6개 지역 지방 경찰청에 수사 본부가 설치되는 등 거의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주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 중 유독 천안시 근처에 자주 출몰했기 때문에 천안 시내 이곳저곳 마다 경찰 병력이 배치되고 차량 검문이 실시되었으며 천안 시민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 당시 신창원 검거 실패로 징계 받은 경찰관들은 29명, 총경 이상만 1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창원은 방송 전파를 타게 되었으며 현상금은 5,000만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헌정사상 최고액의 현상금이었지요. 당시 최저시급이 1500원대였다고 하니 얼마나 큰 돈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일 들이 정말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경찰은 신창원이 나타난다는 사전정보를 입수하고도 자기혼자 공을 독차지하려다가 놓진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찰은 신창원 동거녀 집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하다가 동거녀를 성폭행하여 파면,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검거
1999년 7월 16일 전라남도 순천시 금당 대주아파트 104동 205호에서 가스레인지 수리공은 당시 우연히 의뢰 받은 집을 수리하다가 신창원을 보았는데, 집 내부에는 의미심장하게 운동기구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 신창원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집에 다시 들어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으며, 경찰서에 신고 후 심지어 부동산에 들어가서 그 집이 여자의 명의로 된 건지 확인까지 했다고 하네요. 또한 이 과정에서 집을 계약한 다음날 바로 입주했음을 안 뒤 신창원임을 확신했다고 합니다.
오후 3시 40분경에 수리공의 신고로 경찰 46명이 출동하여 이들에게 둘러싸인 신창원은 5시 20분경, 뒷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경관 3명에게 검거됐다. 검거될 당시 입었던 미쏘니 니트 셔츠가 화제가 되어 한때 저 딱 달라붙는 티셔츠가 '신창원 티셔츠' 라며 유행하기도 했다.[9]검거된 뒤 징역 22년 6개월이 추가되었고 그는 흉악범을 가둬두는 경북북부교도소의 2.6m2의 독방에 수감되었다. 신고를 한 수리공은 포상금 5000만원과 더불어 경찰에 특채되었고, 지금도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검거 당시 심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신창원은 덤덤하게 "편해요 그냥."이라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교도소로 향했다.
저 당시 신창원의 모든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체포 당시 입었던 옷도 그렇고, 이 후 신창원 신드롬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신창원은 이후 청송교도소에서 상담사 자격증을 목표로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2011년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학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는 현재 소년범들을 상담해서 범죄를 막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가 저지른 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중범죄이지만 그의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학교 생활등으로 인한 문제, 우리가 다시 한 번 가정에서의 사랑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꼬리에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제작진에게 보낸 편지를 링크하며 글을 마칩니다!
안녕하세요? 편지 잘 받았습니다. 이틀 동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사형도 부족한 중죄를 지은 죄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모두 자기 변명에 불과할 뿐이지요. 저는 그저 이곳에서 조용히 속죄하며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신창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