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량해전 #이순신 #원균 #권율 #조선 #임진왜란 #정유재란 #선조
반갑습니다 잇님들! 갬성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칠전량 해전입니다!
원균은 한국사 역사상 최악의 인물로 손꼽힙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그는 경상우수사로서 자신의 영역을 지켰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두 척을 제외한 자신의 배를 모두 수장시켜버립니다. 그리고 이순신에게 합류하죠. 한산도 대첩에서 이순신과 함께 활약했지만 이순신의 계략에 대해서 계속 반대하며 무조건 돌격 앞으로식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원균은 병법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이순신은 삼군수군통제사가 되었고 건함 에 열중하고 있던 중, 적장 고니시로부터 조선 조정에 편지가 옵니다. 그 것은 가토 기요마사가 부산포를 거쳐 오고 있으니 수군으로 하여금 그를 공격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신빙성도 떨어질 뿐더러 왜군의 본진인 부산을 치는 것이었기에 신중해야 했음에도 선조는 다짜고짜 이순신에게 가토를 공격하라고 부추깁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에 따르지 않았죠. 이 상황에서 원균이 상소를 올려 이순신을 폄훼하는 글을 올립니다. 내용은 대략 만약 자신이라면 부산포를 단숨에 공격해서 적을 없애버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열받은 선조가 이순신을 압송시킵니다... 그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원균이 갖게 되죠...
원균은 이순신의 말대로 전략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처제 안중홍과의 대화에서 원균은 '제가 이 직함을 영화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순신에 대한 치욕을 씻게 된 것이 통쾌합니다'라 말합니다. 이어서 안중홍이 어떻게 싸울 것인가란 말에 '멀리서 싸울 땐 편전을 쓰고, 가까이서 싸울 땐 칼과 몽둥이를 쓰면 됩니다'라 말했다고 합니다. 즉 전략을 아야 몰랐던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인간이 제대로 싸울리가 없지요.
1597년 거제도 기문포에 왜선 3척이 정박해 있다는 것을 들은 원균은 군사를 거느리고 갑니다. 그런데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판옥선을 갖고도 고작 3척도 제대로 못이기고 오히려 적군을 47명 죽이는 동안 140명이 아군을 잃습니다. 거기다가 판옥선까지 잃게 됩니다. 판옥선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요.
이후 원균은 이순신이 작전회의기구로 쓰던 운주당에 기생을 불러서 술을 마시는 놀이터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부산포 공격도 미루고 미루다가 권율에게 곤장을 맞기도 합니다. 이는 지금으로 치면 합참의장에게 해군참모총장이 빠따를 맞는 것과 같지요. 상당히 쪽팔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어쩔 수 없이 원균은 출정하게 됩니다. 근데 원균은 전쟁의 기본 중에 기본도 모르는 인간이었습니다. 본영인 한산도에서 부산포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이고, 남해안은 서해안 못지않게 해안선도 복잡하고 해류도 빠르기에 이에 대한 기본적인 해류에 대한 정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원균은 가는 도중에 판옥선들을 해류에의해 잃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들을 구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무능한 장수, 대통령, 지도자의 상징은 빤스런이지요...
가덕도에 도착한 원균은 우선 전쟁에 대비하여 식수를 구하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본 수군의 기습 공격을 받자, 이 상륙한 군사들을 모조리 버리고 빤스런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동하는 중에 영등포에서 적을 맞아서 피해를 받지요. 오랫동안 육지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원균과 조선 수군들은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폭풍우까지 덮침으로서 조선 수군의 사기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칠전량으로 도착해서 육지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휴식하고 있던 조선 수군을 일본군이 급습하게 됩니다. 이전에 한산도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리고 도도 다카하라는 수군을 이끌고 정박중인 조선수군을 공격하였고 육지에서도 고니시가 공격하여, 조선 수군은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멍청한 원균은 이 때도 열심히 술을 퍼먹고 있으면서 전쟁의 기본 중에 기본인 척후병을 띄울 생각도 하지 않다가 적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대 참패. 7월 16일 새벽 4시 급습을 받은 조선 수군은 모조리 궤멸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통제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최호등이 전사하였습니다.
이로서 전쟁 초기부터 이순신이 길러왔던 함대 170척 대부분을 모조리 수장시켜버렸고 조선 수군 1만명 전사라는 참담한 결과를 야기했지요. 더 놀로운 것은 판옥선 성능의 3/1도 안되는 세키부네는 이 때 단 60척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단 8척만 침몰했었습니다. 이순신이 통제사인 시절 단 1척의 배도 잃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원균이 얼마나 무능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지요.
칠전량 해전은 리더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전쟁인듯 합니다. 이순신은 전쟁 초기부터 전쟁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고 항상 참모들과 전투를 치루기전에 모여서 전술 논의를 했었습니다. 조선 조정에서 어떠한 지원을 해주지 않자 이순신은 둔전과 통행료등을 이용하여 군비를 확보했고 심지어 자체적인 무과 과거제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신분에 관계없이) 화포에 쓰이는 탄환 재료도 역시 자체적으로 확보했었던 이순신. 그는 단 1척의 배, 단 1명의 아군도 잃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으며 그 결과가 23전23승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반면 원균의 경우 항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는 적의 수급을 최대한 확보해서 자신의 전공을 높이는 것에 주력을 합니다. 전략, 전술조차 없었으며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군의 목숨을 가벼이 여겼으며 부산포에 출전한 이후 배 20척이 표류해도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지요. 마찬가지로 가덕도에서 내린 아군들을 도와주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안에서는 국민이 주인이지요. 우리는 대의 선거제에서 투표권을 통해 권리를 행사합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순신같은 자가 없다하더라도 최소한 원균같은 인간이 지도자가 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당과 이념이 아닌 사람을 보는 안목, 그리고 투표를 통해 원균과 같은 자들을 낙선할 수 있는 힘, 지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