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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소년 Jul 21. 2022

오늘의 역사는?7월14일(바스티유습격사건)


#바스티유감옥습격 #프랑스혁명 #7월14일 #내입대일 #1789년 #한국민주화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덕의공화국



반갑습니다 갬성입니다!  오늘의 역사는 바스티유감옥습격입니다!




1. 배경 -최악의 상황에 있었던 프랑스 혁명정국으로 가는.. 


프랑스혁명을 보통 이야기할 때 귀족들이 시작해서 시민이 완성하고 나폴레옹이 확산시켰다라 말합니다. 그 발단이 되었던 것은 루이 14,15세로부터 이어져온 재정난이었고 이를 극복하기위해 당시 재무재상이었던 칼론느는 보조지세라해서 귀족들에게 세금을 수취하려 했죠. 이에 귀족들의 회의체인 명사회가 열렸고 이 명사회에서는 삼부회를 소집하고 동의를 받아라란 요구를 하게 됩니다. 고등 법원이 이를 수용하게 되었고 결국 루이 13세 리슐리외 재상 통치기 이후 100년만에 삼부회가 소집됩니다. 그리고 이 삼부회 대표 선출 과정에서 삼신분은. 이제껏 쌓여왔던 신분제로 인한 불만을 모두 진정서에 담아 제출하죠. 그리고 테니스콛즈에 모여 삼신분을 위한 헌법이 제정되기까지 의회를 해산하지 않겠다고 결의합니다.(테니스코트의 선언)

이렇게 결성된 의회를 국민의회라고 합니다. 이 들은 기존 삼부회의원들에게 자신들이 주도하는 국민의회에 합류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국왕루이 16세의 명령으로 1,2 신분은 국민의회에 합류함으로서 주도권이 완전히 3신분에게 갑니다



2. 혁명의 시작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다


그리고 3신분층은 어느정도 주도권을 공고히하기위해 군사, 행정적 장악을 위한 행위들을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파리민병대 모집, 그리고 파리자치위원회를 결성해서 시행정권을 장악하려하죠. 이에 국왕루이는 3신분층이 선을 넘었다고보고 근왕병을 소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3신분층이 공격했던 곳이 바로 압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은 우라나라로치면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 현대사로 오면 안기부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곳이 공격 당했다는 것은 기존의 국왕중심의 봉건체제로는 시민들을 비롯한 3신분층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의미했고, 곧 권력공백상태로 흐르게 됩니다. 이 권력 공백 속에서 3신분층의 시민층의 주도하에 부르주아 공화국을 수립하려했던 이들. 그리고 농민들의, 또는 정치적 각성을 이룬 샹퀼로트층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민주공화국누립을 추구한 로베스피에르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프랑스판 춘추 전국 시대가 열립니다.



3. 혁명 정세가 무르익다


바스티유 감옥습격은 프랑스를 혁명정국으로 만듭니다. 농민들이 혁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으며, 봉건영주를 공격하여 신분제 문서를 소각해버리는 대공포가 일어납니다. 여기서 부르주아들은 이 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분열됩니다. 이 중 자코뱅파의 대표격인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 국외도피사건, 민중들의 튀를리궁 습격사건, 지롱드당의 뒤무리에 장군 국외 도피사건을 계기로 국민공회를 실시하고, 


처형당하는 루이16세


이른바 공포정치를 감행하여 덕의 공화국, 민중 중심의 사회민주주의를 실현코자했지만 대내외적 혼란을 수습한 이후 내부분열이 발생하자 온건파, 과격파모두 진압해버림으로서 민심을 잃었고 결국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프랑스혁명에서 민중 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부르주아 공화국 단계에서 그칩니다



4. 내 생각


프랑스혁명은 역사상 민중들의 역사에 최초로 개입하여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혁명입니다. 비록 민중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결국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나폴레옹 법전에 기록되었고, 이 들의 정신은 그대로 7월, 2월혁명으로 이어져 프랑스 제 2공화국을 실현시켰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자발적으로 공화국을 이뤘고 그렇기에 민주주의의성숙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그런 프랑스에서도 사실 나폴레옹 3세의 독재, 독일에게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퇴당하기도하고 드레퓌스사건등 지금의 북풍공작과 같은 공작정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서깊은 민주 국가답게 다시 정도를 갈. 수 있었고 오늘날의 진짜 대의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뚝서게 됐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바로 이 길이라 생각이 듭니다. 한국 역시 광복 이후 반백년간 경제성장과 민주화란 두 키워드를 두고 갈등과 화합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50년도 안되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이룬 국가가 되었지요. 지금도 역시 어떤 난제에 역경을 겪고 있지만 전 한국의 저력을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길이 참 쉽지않다는 것을 보여준 프랑스혁명!  오늘은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킨. 대표적인 사건인 바스티유감옥습격사건이 있었는지 243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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