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자들

보수라 칭하고 수구라 읽는다

by 감성소년

소위 머머 코인이란 말이 유행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누군가의 특정세력의 지지를 받기위한 움직임을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이고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신의 자본을 벌기 위해서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판매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얻는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제품이란 것이 사실을 왜곡하고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게함과 동시에 역사의 진실 앞에서 양심까지 팔아 먹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늘은 그 중심에 있는 518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인은 젖을 무는 순간 거짓말이나 한다는 말을 짓거린 지만원.


우리나라 역사를 이영훈이 영혼을 팔아 먹으려 한다면, 광주의 영혼을 팔아먹으려는 자는 지만원이다. 지만원은 당시 광주 시민군들의 사진을 인용하여 이 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평생에 거쳐 증명을 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518이 북한 개입설이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근데 이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듣기에더 언뜻 이해가 안된다.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라 말한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아는가.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침투했고 이 과정에서 모두 체포되어 수포로 돌아간 사건이다. 이 들 역시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로 가는 동안 거의 기적적으로 서울에 이른 것이다. 한국의 당시 경비가 모두 북한 쪽에 되어 있는데 그게 쉽겠는가. 이렇게 본다면 북한 무장공비가 광주에 이른다... 말이 되는가. 한국의 국경선을 넘어서 광주까지 거리가 몇km이며, 왜 그 많고 많은 곳 중에 광주를 택하고, (자신들이 주로 타겟으로 하는 서울이 혼란스러운 상황인지라 서울 공략할 확률이 더 높았다) 전두환은 자신의 권력을 놓지지 않기위해 수도 방어를 강화한 상태이며, 미국마저 북한의 침입을 막기위해 항공모함을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북한 무장공비가 간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말라 아래 그가 광수, 즉 광주 무장공비로 칭하던 이가 한 인터뷰다.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저렇게 해도 보수라 칭하는 유튜버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칭한다 심지어 전두환마자 600명의 무장공비 침투설을 부인하는 와중에 위대하신 지만원선생께선 여전히600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다. 사람인가


당대 북한군의 개입설을 주장하던 근거로 이를 증명했던 탈북자 출신 김명국은 최근에 진실을 말하였다. 그 인터뷰는 아래와 같다.


‘1980년 광주에 없었던 북한군’ 김명국 “머리 숙여 사죄” - 미디어오늘




출처 jtbc




‘1980년 광주에 없었던 북한군’ 김명국 “머리 숙여 사죄” - 미디어오늘

김명국씨는 “솔직히 조장이 말하는 건 (광주의) 여자 임신부도 ○를 갈라 가지고 길바닥에 뿌려진 것도 봤다 그러던데”라고 말하며 본인도 믿기 어려웠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1980년 5·18 당시 다리를 다쳐 전사자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JTBC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을 보탠 이야기. 그것이 ‘북한군 개입설’의 실체였다”고 보도했다.

김씨는 이날 JTBC를 통해 과거 정부 시절 자신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이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씨는 “내 솔직하게 말할게. 저 ○○○이 패거리들도 나한테서 100억까지 주겠단 사람 있었다. 자기네한테만 나서 달라고”라고 말하며 해당 세력이 ‘공개 기자회견’을 원했다고 밝혔다.

JTBC는 “2010년쯤 (김씨는) 탈북작가 이주성씨와 모처에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자리엔 재향군인회와 보수 정당 관계자가 있었다”고 했으며 “김 씨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북한군 개입설을 이용하려는 세력과도 고리를 끊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김씨는 자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탈북자 이주성씨가 쓴 책 때문에 10여년 전 국정원에 불려갔다. 김씨는 “그것(책) 때문에 저도 국정원에 가서 내가 (사실이) 아니다, 다신 이런 거 안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JTBC는 “국정원은 10년 전에 이미 김 씨의 자백을 확보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3년 5·18 무렵 TV조선과 채널A에 연달아 ‘북한국 개입설’이 등장하며 사회적 논란이 거셌을 때, 국정원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JTBC '뉴스룸' 7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김씨는 5·18 유가족을 향해 “필요 없이 던진 몇 마디 말이 광주 시민들의 맘을 후벼놓고 아프게 했다면 정말 내가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5·18 진상규명위원회를 직접 찾아갔다. 진상규명위는 오는 1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김명국씨와 관련한 조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JTBC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 씨를 비롯한 일부 세력은 김명국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김 씨는 지 씨와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지만원이 만든 ‘광수설’은 엉터리라고 비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이런데도 아직도 5.18일만 되면 포털 사이트의 댓글창은 온갓 5.18을 폄훼하는 글들로 남무한다. 그 들의 관심사는 오직 북한군의 개입과 5.18민주화 운동에서 희생했던 유가족들에 대한 국가 유공자 점수이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 유가족들이 국가 유공자 점수를 원하겠는가, 아니면 희생되었던 자신의 가족의 희생을 더 안타깝게 여기겠는가. 진짜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은 이 들이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글은 5.18민주화 운동의 전말, 인과관계는 생략한체, 시민군 편성등에 주목하여 폭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확한 전말을 알아보겠다. 일단 시작은 빡빡이의 12.12쿠데타이다. 자신의 사권력을 위해서 2스타가 4스타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적 조직인 하나회를 이용하여 최전방에서 공수부대를 끌고와 쿠데타를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전두환의 쿠데타에 반대하고 유신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었다. 신군부는 이에 대해 강경하게 진압을 하는 가운데, 여러 지역 중에서 광주를 택하여 공수부대를 파견한다. 이 때 광주에서는 전남대회장 박관현씨가 주도하는 가운데 횃불시위가 있었다. 박곤현씨는 전라남도 경찰국장 안병하를 찾아가 '학생들도 자율적으로 질서를 지키겠으니, 경찰도 학생시위를 제지하지 말고 협조해 다랄'고 요청하였고, 안병하 국장도 흔쾌히 승낙하여 시위는 평화롭게 저녁 10시30분에 자진해산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굉장히 평화적인 시위로써 시민 모두가 아무런 폭력적인 모습도 없는 가운데 평화롭게 끝났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굉장히 강경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17일 밤11시 40분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이에 김대중을 비롯한 26명의 정치인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새벽 18일 새벽 2시무렵, 전남대, 조선대 캠퍼스에는 공수부대가 진주했다. 이어 시위했던 학생들 112명을 체포하게 되었다.그리고 다음날 새벽부터 시위를 주도하였던 전남대 및 여러 전남 시내 대학 정문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대학생들을 다짜고짜 곤봉으로 구타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당하였던 학생들은 시위와 무관한 고시생등 일반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공수부대는 철저히 전남대 입구에서 학생들의 등교를 막아섰고 이로인해 시민들과 공수부대원들간에 충돌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연행되었다. 이에 시민들은 광주 주요 시내인 금남로에서 연행된 학생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였다. 여기에 대해 공수부대원들은 강경적으로 대응했으며, 나중에는 총검을 장착한 후 시민을 진압하며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시작했다. 시위는 이에 점점 과격해져 갔다. 공수부대원들의 이유없는 강경적인 곤봉질에 맞서서 파이프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공수부대원들의 과잉진압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평화적으로 시위했던 학생들에 대해서 강경진압했던 그 들이 촉발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19일부터는 학생 차림의 젊은 이만 보면 무조건 연행해갔다. 오전 10시 50분부터는 군용트럭30여대가 광남로 사거리, 도청앞으로 와서 대검을 착검한 소총으로 시위대를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19일부터는 m16총을 장착한 군인들, 캘리버50기관총으로 무장한 장갑차가 시위대에 나타났고,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21일 시민 대표 4인이 전남지사와 협상을 하기도 했다. 계엄군 철수와 연행된 사람들의 석방, 당국의 공개 사과등을 조건으로 시위대 해산을 하겠다는 협상이었다. 하지만 계엄군은 해산하지 않았고, 시위는 격화되었다. 그리고 21일 1시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사격이 시작되었다. 전남도청에서 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향해 공수부대가 사격을 가한 것이다.


아직 까지도 정확한 사망자들을 계산하기 힘들만큼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전남대 병원은 부상자들과 사망자들로 가득했다. 이에 시민들이 무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경찰서를 습격하여 칼빈 소총을 탈취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군용헬기는 도청 부근에서 기총소사, 기관총으로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후 계엄군 5시30분 철수 결정을 하고 8시에 갑자기 물러났다. 이는 계엄군의 정략으로 물러났을 경우, 무정부상태가 되었을 때 시민군이 약탈을 할 것이고 이로써 명분이 생긴 계엄군이 시민군을 진압하면 수월할 것이란 계략이였다 하지만 무정부상태가 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역할을 맡아, 일제 정연하게 움직였고, 여기에 대해 시민들도 먹을 식량을 제공하며 협조적이었다. 약탈은 일도 있지 않았다


그리고 5월 26일 계엄군은 최후통첩을 한 후 약 12,662명(특전사 3,327명, 20사단 4,637명, 31사단 1,195명, 전교사 3, 502명)의 군을 이끌고 전남도청에서 시위중이언 시민군을 공격했다.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칼빈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들은 이 들에 대항할 수 없었고 결국에 5.18은 끝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희생당한 민간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단지 친구 집에 놀러 가다가 계엄군에게 잘못걸려 총검에 찔려 죽고, 이후 확인사살까지 당했다는 여고생 손씨. 이 아버지의 경우 딸의 시체를 보고 너무 놀라 이듬해 생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한 집안이 계엄군으로인해 풍비박산 난 것이다.

아래 글은 '그 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피해 사례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속 광주민주화 사태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재조명됐다.



과거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령 탓에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공개되며 보는 이들의 충격을 안겼다.



이날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령이 내려지며 피해를 입었다는 한 시민은 현재 할머니가 돼 "버스 있는 곳에서 우리 둘째는 하천쪽으로 뛰고 우리 작은 아이는 다른 쪽 하천으로 뛰었다. 그런데 작은 딸이 안 보이더라"며 "아들들은 멀리가서 괜찮은데 딸이 차 바로 밑에 있으니깐 죽음이 직감됐다. 작은딸 부르면서 일어나니깐 내 쪽으로 총을 쏘더라"고 말했다.



이로써 이 시민은 총에 눈을 스쳐 동맥이 파열됐고 끝내 어둠속에 갇힌 삶을 살게됐다. 그녀는 "보안대에서 나왔다고 음료수를 마시라도 하더라. 어떻게 총 맞은 이야기 할까봐 그랬던 것 같다"며 '육군 기록에는 군인이 쏜 게 아니라고 적어놨다고 하더라'는 말에 "천만에 말씀이다. 군인들이 쐈다. 현장에서 다 봤다"고 밝혔다.





이렇게 진실은 거짓이 되고 고통이 됐다. 또 다른 518민주학살 피해자인 딸을 둔 어머니는 딸이 임신 7개월 상태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당시 검안의는 "M16으로 전두부를 맞아서 후두부를 관통했다. 임신부였는데 가족들 울음 소리가 상당히 기억에 남아있다"고 말해 당시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한편 오늘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와 축제로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펼쳐진다.



출처 : 더퍼스트미디어(http://www.thefirstmedia.net)


출처 : 더퍼스트미디어(http://www.thefirstmedia.net)




아무쪼록 5.18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광주의 영혼은 이후 1980년도 민주화운동의 기반이 되었고 이 들의 활약이 기반되어 했던 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민주항쟁으로 그 결실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알아봤다. 실상이 이러한데, 그 실상이 어떻든 저쩧든간 자신들의 이익, 소위 보수코인을 갖고 위해 진실도, 양심도 내버리고 사실왜곡하는 이 들이 유튜브 판에 차고 넘치고 있다.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서 현재 유가족들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들의 아픔은 져버린채 살아가는 것이다. 가히 악마의 영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 팔아 넘기고, 자본을 택한 이 들에게 과연 이 정의에 입각한 시장 경제의 원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들의 악행을 볼 지 주목하고 있다.


41년만에 공수부대출신 A씨가 고박병현씨의 유가족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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