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실리외교 속에서 다극화 시대의 해법을 찾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을 사실상 납치한 순간, 세계는 조용히 선을 넘었다.
그 사건은 단순한 외교 분쟁이 아니라, “주권은 조건부”라는 선언이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이미 다극화 시대에 진입해 있었다. 그리고 그 절정은, 미국이 지난 100년 가까이 동맹이었던 NATO를 상대로 사실상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그린란드 점령을 거론한 순간이었다.
이건 충격적인 장면이다.
동맹은 더 이상 신성한 계약이 아니고, 역사적 신뢰는 전략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유럽 근대 외교사의 악몽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1차 외교 혁명의 배경이 된 7년 전쟁
18~19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이른바 ‘외교혁명’을 떠올려보자.
프랑스는 수백 년간 피를 흘리며 싸워온 오스트리아와 손을 잡았다. 원수와 동맹을 맺는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유럽의 힘의 균형은 재편됐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둘러싸고 새로운 동맹 질서를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20세기, 전혀 다른 체제였던 히틀러와 스탈린은 불가침 조약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는다.
그 결과가 바로 1차, 2차 세계대전이었다.
역사는 분명히 말한다. 외교 질서가 급격히 재편될 때, 전쟁은 선택지가 아니라 귀결이었다는 것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다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2차 외교혁명은 동맹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는 동맹국에게는 유난히 냉혹하고, 약소국에는 잔인할 정도로 무자비하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
이건 세계 경찰의 포기다.
과거 팍스 아메리카는 ‘정의’라는 명분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의 미국은 그 명분을 상실했고, 그것을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건 미국 패권의 위기가 아니라, 미국 패권의 종언에 가깝다.
한국에게 이 흐름은 결코 추상적인 국제정치 이론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같은 상황을 겪었다.
수천 년 동안 중국과 책봉·조공 관계 속에서 “형제 국가”를 자처했지만, 청나라는 위기 앞에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 했다.
일본은 “근대화”라는 달콤한 말을 들고 왔고, 그 말에 속아 넘어간 지식인들은 결국 친일파가 되었다.
러시아는 도움을 약속했지만, 속내는 조선을 남진 정책의 교두보로 삼는 것이었다.
미국은 형식적인 지원만 약속했고, 결국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는 힘이 없었고, 선택지는 없었으며, 외교는 명분에 묶여 있었다.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우리는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 문화력을 모두 갖춘 국가다. 원한다면 핵무기조차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이 정도의 종합 국력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주변은 모두 강대국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감정도, 충성도 아니다. 오직 국익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광해군이다.
광해군은 명분을 버렸다.
성리학적 ‘의리’ 대신 백성의 생존을 택했다. 그는 명과 후금(여진) 사이에서 줄을 섰다기보다, 균형을 탔다. 오랑캐라 불리던 여진과도 손을 잡았고, 사대라는 껍질을 과감히 벗어던졌다.
그건 비겁함이 아니었다.
그 시대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어려운 용기였다. 한국판 외교혁명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를 따지기 전에, 누가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묻는 외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
다극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질서는 무너졌고, 규칙은 선택적으로 적용된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명분이 아니라 국익, 감정이 아니라 계산, 충성이 아니라 균형.
광해군이 그랬듯, 우리도 다시 한 번 외교혁명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이 선택을 미루면, 역사는 또다시 우리에게 잔혹해질 것이다.
이건 경고가 아니라, 역사가 반복되기 직전의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