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는 총을 든 관료를 통제할 수 있는가
요즘 미국 뉴스에서 미네소타가 계속 등장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연방 이민 단속 기관(ICE) 요원에 의해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이 연속해서 벌어졌고, 그 과정과 정당성을 두고 거대한 정치적 논쟁이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정당한 법 집행”을 말하고, 지역 사회와 진보 진영은 “통제되지 않은 국가폭력”을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치안 문제가 아닙니다. 연방 권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멈출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이 장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의 미니애폴리스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미네소타라는 지역이 원래 어떤 정치적 토양 위에 서 있었는지도 보게 됩니다. 이 주는 결코 ‘순한 중도’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강한 노동·진보 전통을 가진 지역 중 하나였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지금의 충돌은 더 상징적입니다.
미네소타주의 농민 노동자 운동연합회 마크(출처 위키백과)
미네소타 정치의 뿌리는 20세기 초 농민-노동자 연합 운동에서 시작됩니다. 1910~30년대, 이곳에서는 농민과 광산·철도 노동자들이 결합해 기존 양당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 정치 세력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흐름이 바로 농민노동당(Farmer–Labor Party) 이었고, 이후 오늘날 민주당과 합쳐져 ‘민주-농민-노동당(DFL)’이라는 독특한 지역 정당 전통으로 이어집니다.
이 지역은 단순히 복지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공의 역할 확대
노동조합의 정치적 영향력
대기업과 금융권에 대한 견제
를 정체성으로 삼아온 곳입니다. 미국 전체로 보면 꽤 왼쪽에 서 있는 지역이고, 그래서 연방 정부, 특히 공화당 보수 정권과의 긴장은 늘 잠복해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사건 하나의 진실공방”이 아닙니다. 연방 집행기관이 지역의 동의와 통제를 얼마나 무시할 수 있는가라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ICE는 원래 이민 단속 기관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이 조직은 사실상 준군사 조직처럼 행동한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왔습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총을 들고 법을 집행하는 조직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위험해진다.
지방 정부는 “과잉 진압”을 말하고, 연방 정부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말합니다. 이 구도는 낯설지 않습니다. 1960~70년대 반전 시위, 1968년 시카고, 1992년 LA, 그리고 2020년 미니애폴리스까지, 미국 현대사는 늘 이 충돌을 반복해 왔습니다.
트럼프 정치의 특징은 단순합니다.
모든 사회 문제를 ‘질서’의 문제로 환원한다. 그리고 질서를 집행하는 권력의 손은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준다.
이민, 시위, 도시 범죄, 정치적 반대파. 전부 “강하게 누르면 해결된다”는 세계관입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통쾌해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권력기관 스스로를 통제 불가능한 존재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는 나라의 특징이 뭘까요?
경찰과 정보기관이 ‘국가’ 그 자체라고 착각하는 나라의 특징은 뭘까요?
역사는 너무 많은 예시를 보여줬습니다.
물론 지금의 미국은 1980년 한국이 아닙니다. 제도도 다르고, 언론도 살아 있고, 선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습니다.
무장한 국가 권력이 “우리는 정당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시민은 이미 방어적인 위치로 밀려난다.
광주 역시 “질서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습니다. 언제나 국가폭력은 자기 자신을 질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역사는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건 미국 전체의 문제고, 더 넓게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문제입니다.
권력기관은 누가 통제하는가?
총을 든 공무원은 누구에게 책임지는가?
“국가”라는 말은 언제 시민 위에 서게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사회는, 언젠가 반드시 더 큰 대가를 치릅니다.
지금 미네소타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지역 소요가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스스로 만든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제로 지킬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봅시다.
이 시험에서 떨어진 나라들은, 역사책에서 늘 비슷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강한 국가를 원하다가, 시민을 잃은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