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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을 보면서 박지성이 떠오르는 이유는

by 감성소년

김연경. 올해나이 35. 이제 운동선수로는 황혼,기인 시점이다. 그녀는 이번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라고 결의를 다지고 시작을 했다.

그녀의 마지막 올림픽. 사실 그녀가 있는 시절부터 여자 배구를 본 나로써는 도무지 상상이 안갔다.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는 한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 상상이 안갔다. 그만큼 그녀의 팀내 비중이 아주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왠지 그녀를 보면 과거 한국축구의 간판스타 박지성이 떠오른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1.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하는 선수

'프로는 실력, 그리고 돈이다'란 불문율이 있다. 이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자본주의 사회에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이라는 매개를 떠나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기존에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것을 개척하고자 하는 도전 정신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도전이라는 것은 정말 쉽지않은 단어이다. 하지만 김연경, 박지성은 모두 자신의 실력향상에 방점을 두고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간다. 먼저 한국축구의 대들보인 박지성이 그러하다. 박지성은 한국인 축구 불모지였던 유럽에 진출했다. 2002월드컵 활약을 바탕으로 히딩크 감독을 따라 이영표와 함께 psv에 진출한 박지성은 첫 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유럽의 빠른 템포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심지어 당시 팀 주장이었던 반봄멜한테는 물론, 홈 관중들에게도 야유를 받는 최악의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으로 그 것을 증명한다. 2004년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4강 2차전 경기에서, 1차전에 패배한 psv 는 결승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대량득점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전반 psv공격수와 밀란의 수비가 경합하는 사이 나온 루즈볼을 그대로 왼발로 때려넣어 ac밀란의 골문을 흔듦으로써 팀의 사기를 불어주었다. psv홈 관중들은 모두 '지성 빠레'를 외치고 있었다. 실력으로 고난을 극복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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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연경의 이야기이다. 김연경은 2007년 이미 3번의 무릎수술을 받은 선수이다. 배구선수로서 무릎 부상을 3번이나 당하고 칼을 데었다는 것은 정말 치명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배구선수 중 특히 김연경의 포지션인 공격수는 점프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릎을 세번이나 부상당하고도, 어느 팀이든 이적하든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는 팀들을 최상위로 이끄는 것에 성공했다. 특히 2011년 그녀는 여자 배구의 성지 터키 리그로 진출한다. 터키 리그에서 페네르바체에 입단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적 첫 해부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개인 mvp타이틀을 거머쥔다. 가이 기록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팀내 주포가 되어 큰 활약을 했으며, 이미 첫해부터 정말 없어서는 안될 주전선수가 된다. 하지만 2012년 흥국생명과의 계약 문제로 인해서 갈등이 있었다. 이 파장으로 인해서 그녀는 벤치멤버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정 감사가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큰 일이었지만, 그녀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런던 올림픽 4위에 이르는데 거의 모든 한국의 공격, 수비를 전담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는 프로 중에 프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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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청난 프로 정신

박지성은 평발이다. 평발인 그가 이룩해왔던 것들. 놀랍기만 하다. 사실 그는 차범근 축구상을 받은 유망주 중에 유망주였지만 그의 삶은 여간 쉬운 길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여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했다. 그런 그를 발굴한 허정무. 이 후 올림픽 대표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2월드컵 활약, 유럽진출을 이끌어내며 그는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여기서 많은 과정을 생략했지만 한 번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평발이다. 평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별명은 산소탱크였다. 많은 움직임으로 팀의 수비 공격에 도움을 주는 플레이. 모든 편견을 깬 그의 실력은 오로지 프로정신에 입각했던 것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연경. 그녀는 17세의 나이로 주니어 대표로 오른다. 이후 베이징 올림픽부터 향후 10년 이상을 한국 배구를 책임진 그녀. 이전에도 말했지만 그녀는 부상을 당했었다. 2007년 이전에 3번 무릎 부상을 당해 큰 수술을 했으니 더 말은 하지 않겠다. 여기에 관련된 일화가 있어 전한다.

2006년 흥국생명 당시 흥국생명이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연경이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다. 당시 단장은 김연경이 이미 무릎 수술을 2번이나 했고, 그녀의 국대에서, 팀에서의 지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의견을 묻지 않고 수술을 하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개인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결정을 할 수 있는가' 그녀는 뛰고 싶었던 것이다. 무릎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그녀는 자신의 팀을 위해 헌신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 '부상, 뭐 뛸 수 있으면 그냥 가벼운 부상정도였겠지..' 하지만 그녀는 이 부상으로 인해서 수술을 했어야 했다. 부상 경중에대해서 이 것보다 더 쉬운 설명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것도 이전에 2번이나 수술한 상태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점프하기는 커녕 서있기도 힘든 상태란 것을. 위의 김연경의 저 발언은 프로정신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3. 팀 오로지 팀

김연경은 사실 이번 올림픽 이전에 너무 큰 곤혹을 치루었다. 이다영과의 불화설이 바로 그 것이었다. 이다영은 공식 인터뷰에서는 물론 sns에 아주 적극적으로 김연경과의 불화가 있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알렸다. 이에 대해 김연경은 '팀에 내부 불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 하면서 구체적인 말은 피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개인 sns에 '최고의 복수는 복수하지 않는 것'이라는 표현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이 과정에서 이 것을 지켜본 이다영 학폭 피해자들의 폭로로 인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이다영, 이재영 자매의 학폭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에는 그렇게 사건이 종결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돋보였던 것은 김연경의 태도였다. 팀내 고참으로서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말하는 스타일의 김연경으로서는 이다영의 행동에 대해서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팀에 갖고 있는 영향력, 입지를 생각해서 최대한 자신의 솔직한 발언을 피한 점, 이 것은 정말 프로정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생각해보라. 주변에 자신을 대놓고 비난하는 이를 무시하는 것이 쉬운지. 일단 필자는 쉽지 않다. 그런 그녀가 이번 올림픽에서도 이런 메인급활약을 하는 것에 너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상황이다.


여태까지 박지성, 김연경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사실... 실력으로는 김연경의 입지가 더 큰 것은 사실이다. 배구가 만약 한국 내에서 축구 정도의 입지를 가진 스포츠였다면 매년마다 그녀의 기사로 도배가 되었을 것이다(마치 손흥민 같이). 그녀가 걷고 있는 행보, 그녀가 갖고 있는 태도, 스타일. 사실 아직까지 가시화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도쿄올림픽에서의 활약. 이 것은 모두 정말 절대 우연이 아닌 그녀가 프로정신에 입각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사실 피셜은 아니고 어느 기자가 그러더라. 모든 배구 선수들이 김연경을 존경한다고. 지금 한 번 다시 한일전과 터키전이 끝난 직후의 상황을 보아라.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김연경을 필두로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는 프로 중에 프로인 것이다. 자신보다 팀을 이끌 줄 아는. 그런 프로. 식빵어니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녀의 승부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여태까지 보여온 행보. 그리고 그 마지막이 될 올림픽. 그녀의 마지막 뒷걸음이 너무나 멋지고 예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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