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그야말로 졸전이었다. 벤투의 한계성이 그대로 드러난 한 게임이었다. 벤투는 마지막까지 빌드업 축구를 고수했고, 상대는 미드필더까지 수비진에 내려가있는 전술을 통해 효율적으로 벤투호의 빌드업 축구를 저지했다. 이건 마치 게임 롤로 치면 상대의 탑에 가렌이 올라왔을 때, 가렌의 극상 캐릭터인 티모를 보내는 것과 같고,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상대의 뮤탈에 대응하여 투스타게이트에서 커세어를 생산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진짜 벤투호의 문제는 유연함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벤투호는 플랜 B가 없다. 사실 전반에 우리나라는 괜찮게 하였다. 골결정력이 문제였지 찬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반 중반 이재성이 문전 앞에서 놓진 골은 진짜 두고두고 너무 아쉬운 찬스였다.
그 외에도 세트피스에서 수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놓졌다. 문제는 후반이었다. 후반에 이라크는 좀더 라인을 올리고 압박을 나왔다. 우리나라의 전술에 대해 전반에서 적응을 했기 때문에 거기 맞춤 대응으로 프레싱을 강하게 넣은 것이다. 이 때부터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벤투는 승부수로 남태희를 넣고 손준호를 뺀 대신에 손준호의 수미 자리에 황인범을 넣었다. 황인범은 공미에서 훌륭한 활약을 했지만 수미로서는 아직 국대에서 좋은 활약을 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벤투는 남태희의 공격성과 미드필더진에 패싱에 능한 선수들을 넣음으로써 자신의 빌드업 축구를 강화하고자 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황인범은 피지컬적으로 좋지 않다. 이 점을 이용하여 이라크 선수들은 황인범에 대해 적극적으로 압박했고, 수비직역에서 황인범은 탈압박을 하지 못해 볼을 뺏기는 경우를 많이 보였다. 이 것이 과연 선수 개인만의 탓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투는 미들진을 그대로 유지한다. 후반이 지나갈 수록 오히려 우리나라가 밀리는 추세가 되었음에도 포지션을 유지했고 전술을 유지한 벤투는 이 경기에 패배에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그런 말이 무색하게도 벤투는 물병을 던지는 충동적인 모습을 봄으로써 오히려 선수진을 동요시키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 것은 사실 축구대표팀의 수장으로써 보이면 안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무기력하게 골을 넣지 못하고 무승부를 거두었다.
솔직히 선수개개인의 능력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재성은 볼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였고, 전방 공격수로 나온 황의조도 거의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 손흥민 역시 소속팀에서 보여준 과감한 슈팅을 못해주었으며 미드필더로 나온 황인범도 전반만큼의 활약을 후반에는 이어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수들...
언급한 선수들은 거의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을 정도로 좋은 폼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문제는 이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보여주는 좋은 폼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건, 환경을 감독이 마련해주었는가이다. 손흥민과 황의조, 황희찬, 이재성은 모두 귀국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로 경기에 투입한다는 것(황희찬 제외).. 이 것은 누가봐도 너무 무리한 선택이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혹자는 그리 말할 수 있다. '저 선수들은 대체할 선수들이 있는가'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시도는 해봤냐'이다. 사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전반에 잠깐 나온 측면 공격수 송민규는 거의 선발 데뷔전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대표팀 전술에 잘녹아 들었다.
사실 케이리그에는 송민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폼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올림픽에서 멕시코전에 대활약한 이동경, 이동준같은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준다면 과연 이 선수들이 과연 이후에 지금의 주전급인 남태희보다 더 못할 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이청용, 기성용 역시 과거에 fc서울 시절에 허정무가 꾸준히 대표팀에서 기용하였고 그 결과 러시아 월드컵까지 부동의 대표팀에이스로 군림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당연히 그 결과는 없다. 우리가 미래의 더 나은 대표팀을 위해서는 계속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하다. 그 경쟁을 유도하는 것은 감독의 유연성있는 선발이다. 소속팀에서 더 나은 폼을 유지하는 선수들을 꾸준히 선발하고 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새로운 선수들에게는, 그리고 기존의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는 좋은 활약을 하면 국대에 뽑힐 수 있다는 희망, 기대를 갖게끔하여 동기부여를시키고, 기존의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선의의 경쟁 상대를 만들게 함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게끔하는 좋은 동기부여를 작용케한다. 이러한 선의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이다. 히딩크 감독 시절 자신이 황선홍, 안정환과 같은 엄청난 실력있는 선수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대표팀에 차출했다가도 맘에 안드는 폼을 보였을 때는 다시 선발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2002월드컵 이후 국대경기를 한 번도 안본 적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골수 한국 국대 팬이다. 이 점은 정말 자부할 수 있다. 그런 사람으로써 이라크전 경기는 실망 그 자체였다. 동시에 이란전에 왠지 과거 슈틸리케가 수비진에서 빌드업축구를 하다가 역습 한 방으로 졌던 모습을 다시 재연할까봐 걱정이 든다. 벤투의 현재 스타일을 고수한다면 정말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제발 벤투호가 좀 더 각성해서 유연한 전술과 선수 운영능력을 보였으면 한다. 진심으로 한국축구가 잘되길 바라는 팬의 입장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