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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유씨 Oct 25. 2024

할머니와 또리 1.

 복순 할머니 이야기

 나는 전라도 지리산 자락에 살던 촌부다. 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멀쩡한 집을 두고, 마당도 없는 또리네 집에 오게 되었다. 가끔 또리가 시골집에 놀러 오기는 했지만, 내가 또리네에 얹혀살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또리뿐만 아니라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자식을 키우면서도 개나  부뚜막에 올라가는 고양이를 안고 노는 아이들이 못마땅했다.


  80이 넘어서 몸이 성치 않은 상태로 털 날리는 개와 백년손님이라 하는 사위에 오게 된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손주내가 오면서 집 근처로 나가 살게 되어 더 미안했다.

 또리네 집에 있다 보니 교회사람이 수시로 오는데, 또리가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손님이 와도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보다, 또리한테는 더 다정한 것 같아 '딱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또리가 퇴근한 사위에게  꼬리를 정신없이 흔며 '보고 싶었어요' 하는 것을 보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리도, 나도 나이 들기는 마찬가지인데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아 부러웠다. 그래서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싶은 마음이 더 들었다.

   

 소파에 앉아 또리를 눈여겨보았다. 식구들이 없으면 하루 종일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그러던 또리가 사람이 오면 꼬리를 흔들며 일어나 움직였다. 혼자 있으면 나도 우울한데 저도 그런가 보다 싶었다. 같이 살다 보니 어느새  물이 없다고 물그릇을 긁으면 ‘내가 니 물주는 사람이냐’고 중얼거리며 물을 부어 주었다. 화장실 문이 닫혀 있으면, 문 한 번 긁고 나 한 번 쳐다보는 것이 ‘할머니, 문 열어줘요’하는 것 같아 ‘내가 니 심부름꾼이냐’며 열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 외출하던 날에 내 옆에 와 등을 기댔다. 저리 가라고 손으로 밀치기도 했지만, 어느 날  또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또리의 눈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데 내게 마법을 부린다. 산책을 하고 싶으면 눈이 마주칠 까지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한 번은 내 얼굴을, 한 번은 베란다 문을, 결국 짓을 하며 문 열어 달라고 한다. 그러면 결국 또리의 손발이 되고 만다. 낑낑거리는 법 없이 말을 걸어주는 녀석이 어느새 내 마음에 마법을 부렸나 보다.

 죽고 싶었던 생각을 또리랑 산책길에 잊었다.


 엄마의 입장에서 글을 써 보았다. 봄을 맞아서 엄마와 산책을 시작했다. 빨리 걷지 못하는 엄마와 호기롭게 걷던 또리의 산책길이 요란했었다. 처음 산책할 때는 실랑이를 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걷는다. 사람에게서 채우지 못하는 마음의 빈자리를 또리가 채워준다. 서로 애틋하게 바라보는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친정식구들은 엄마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또리의 사진을 보면서 신기해한다.      

또리야! 할머니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    


       2022. 2. 초고

       2024. 10.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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