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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Jun 28. 2023

한 여름밤의 꿈

내가 다닌 국제학교는 아주 어린 2~3살의 어린이집 아이들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두 한 캠퍼스 안에서 지냈다. 우리는 학교를 건물이라고 하지 않고 캠퍼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건물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무려 13개가 넘는 건물들이 있었고, 학교는 단 한 번도 공사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몇 개의 건물들이 들어섰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다닌 학교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드넓은 부지에는 교실 이외에도 야외에서 햇빛을 받으며 쉴 수 있는 언덕, 한 바퀴를 다 돌아야 400m가 되는 대운동장, 놀이터, 축구장, 농구장, 배구장, 실내운동장, 양궁장, 수영장, 콘서트장, 음악 녹음실, 악기 보관실, 그리고 개인 미술실까지 정말 없는 것이 없는 학교였다. 전교의 모든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뛰놀 수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다음 교실로 이동하는 15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는 햇빛을 받으며 풀밭에 누워 잠도 잘 수 있었고, 야외 카페테리아 벤치에 앉아 점심도 먹을 수 있었다. 수영을 마친 후에는 샤워실에 앉아 사우나도 할 수 있었으며 연못에 물고기들에게 밥도 줄 수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을 그 학교에 다녔다. 국제학교는 한국과는 다르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는다. 물론 Elementary School, Middle School, High School이 있지만, 중학교 1학년을 6학년으로, 고등학교 1학년을 9학년으로 부른다. 결국 한국과는 달리 초등학교가 5년, 고등학교가 4년인 셈이다.


국제학교는 개학 시기도 한국과 다르다. 3월에 개학을 해서 12월에 한 학년을 졸업하는 한국과는 달리, 내가 다닌 학교는 8월에 개학을 했다. 6월을 시작으로 8월까지 두 달간의 긴 여름방학을 보낸 이후, 새 학기에 입성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 학년에도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섞여 있다. 8월 새 학기를 기준으로 만 나이로 계산하니, 어쩔 수 없다. 이때 나는 친구들의 나이를 전혀 모르는구나, 처음 느끼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가자면, 고등학교 졸업 후 졸업여행을 갔던 때이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일반 고등학생들과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전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미국으로, 호주로, 영국으로, 또는 나처럼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이 친구를 못 볼 수 도 있다는 두려움, 그 흔한 동창회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몇 번이나 경유해서 가야 한다는 수고스러움, 비록 지금은 꼭 연락하고 지내자고 말하지만, 시차와 각기 다른 생활패턴으로 연락이 끊길 것을 아는 현실적인 마음들이 합쳐져, 우리는 일주일간의 길고 긴 졸업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한 학년에 60명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은 서로 친할 수밖에 없다. 친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이름과 대략적인 성향은 알 수밖에 없다. 우리 60명은 독채 풀빌라 여섯 개를 빌려 서로의 숙소를 오가면서 지냈다. 풀빌라 뒤편에는 수영장이 하나씩 있었고, 이 수영장은 곧장 바다로 이어졌다. 수영장 뒷길을 통해 여섯 개의 빌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침에는 옛 도심을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고 밤이 되면 수영장에서 파티를 벌였다. 형형색색의 술을 와인잔에 따르고 와인잔을 수영장에 동동 띄우면 낙원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정말 이 세상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이 끝인 것처럼 그렇게 밤새 놀았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에 많은 한국 학생들은 입시를 준비하러 미리 한국으로 떠났지만, 나는 이미 대학에 합격해 9월 입학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건 다 즐기고, 속이야기도 마음껏 털어놓으며 그렇게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일주일은 지나버렸다.


아직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끔 만나 이야기를 할 때면, 그 당시의 에피소드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누구는 그때 여자친구에게 차여서 밤에 바닷가에 혼자 앉아 울고 있는 걸 발견했다 더라,  누구랑 누구는 그때 사귀기 시작했다더라, 그때 우리가 수건을 달라고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3번이나 했는데 결국 안 오지 않았느냐 등등. 모든 순간들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진 그 시간들은 어디에 보관되고 누구에게 기억되고 있을까. 그때로 돌아가 올려다보던 어두운 밤하늘에 박힌 작은 별 하나에 추억 하나를, 또 다른 별에 그리움 하나를 콕콕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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