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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윤 Aug 09. 2023

나연이의 이야기 / 무화과


나연이의 이야기

나연이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서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매달 점심 한 번은 함께 먹자는 약속을 한 뒤로는 한 번도 빠짐없이 만났다.

최근 한 달간 나연이는 감기를 2주 넘게 앓았었고, 새로운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 다육 식물이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 이태원에 있는 클럽에 처음 가보고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동네를 산책하다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인사를 하기 뭐해서 그냥 지나쳤다고도 말해주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중학교 졸업 앨범을 펼쳤는데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영어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어제는 자기 전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오늘 나를 만난다고 말하다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남자친구가 최근 등에 타투를 했는데 솔직히 맘에 안 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와 결혼할 건 아니 니 자신이 뭐라 할 건 아니어서 그냥 하라고 내버려두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저번에 소개받았던 남자랑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끝난 지가 언젠데 라며 이젠 기억도 잘 안 난다고 대답했다. 나연이는 나에게 결혼은 몇 살에 할 거냐부터 해서 아이는 낳을 건지, 주변에 아는 언니가 곧 결혼하는데 부럽기도 하지만 자기는 결혼 자체가 아직 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우리는 을지로에 있는 국밥집에서 만났는데 ,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들의 소주를 보고 한 잔씩하고 싶었지만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참았다. 그러면서 다음 달에는 점심이 아닌 저녁에 만나 술을 마시자고 약속했다. 한여름에 국밥집에서 만나 땀을 흘리며 밥을 먹고 나니 진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무화과

9월에 태어난 너는 무화과를 참 좋아했다. 처음 너희 집에 초대받았을 때, 네가 내게 처음 내어준 무화과를 잊지 못한다. 아마 그때 생무화과를 처음 먹었던 거 같다. 그러면서 자기가 제일로 좋아하는 과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먹는 무화과보단 한 달 뒤 자신의 생일 때쯤이 가장 맛있다고 들뜬 목소리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너와는 다르게 나에게 무화과는 그리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장에 무화과가 보이기 시작하면 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구나라고 떠올랐다. 그다음부터 너희 집에 갈 때마다 무화과를 사서 갔고 , 몇 번씩 같은걸 사가도 너는 그때마다 좋아했다. 무화과철이 지나고 나면 건무화과로 만든 디저트라도 꼭 사가곤 했다.

한 번은 너의 생일 이틀 전 내가 직접 무화과 케이크를 만들어서 선물했는데, 그때 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사진도 여러 장 찍고 정말 감동이라며 나에게 고맙다고몇 번이나 말했다. 사실은 생크림 케이크에 무화과를 시트 사이와 위에 얹은 것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너는 휴학을 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너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고 졸업 후 나는 워킹 홀리데이 준비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그러다 어제 아는 동생에게 무화과 한 박스를 선물 받았다. 별생각 없이 한입 베어 먹은 무화과는 정말 맛있었다. 얘가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었나? 싶어 달력을 보니 9/7일.너의 생일이었다. 네가 이 글을 보고 있었으면 참 좋겠다.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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