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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책방 Mar 13. 202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40대 아재 직장인 독서 전투 에세이

필자는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주말부부를 하고 있다.  주말을 보통 서울 집에서 쉬고, 일요일 오후 회사가 있는 광주로 출발하기 직전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버스터미널 지하에 있는 서점이다.  책을 사러 가기보다는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알아보고, 유학이나 기술 동향을 살펴보며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 기다리던 곳이다.  중앙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가들의 책이 -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토 에코, 알랭 드 보통 등이 지은 책- 전시되어 있다.  그때부터 눈에 뜨인 소설책의 제목이 있었다.  바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원제는 'Essay in love'이다. 한글판 제목으로만 봐서는 별점 5개, 10점짜리 책이다.  제목만으로 독자의 손을 확 끌어당긴다.  내용은 어떨까?  
 



 글에서 '나'는 런던의 워털루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건축가이다.  파리로 출장을 다녀오던 도중 비행기 안에서 '클로이'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사랑은 런던의 도착과 함께 스파크가 튀듯이 시작된다.  참고로 글에서 클로이의 나이는 24살이고, 이 책이 알랭 드 보통이 25살 시절 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분히 작가의 경험이 조금 반영되었거나, 아니면 약간의 경험과 함께 그의 바람이 투영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다시 글로 돌아가서, '나'와 클로이는 파리발 런던행 브리티시 에어웨이에서 만나 그들의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주로 내셔널 갤러리에서 '큐피드와 비너스의 우화', '조반니 아르놀피니의 결혼'등을 보며 연애를 한다.  필자 개인적으로 매우 흥분되는 연애 광경이다.  앞에 언급된 그림들은 필자도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그림이기 때문이다. 영국 유학시절 5번 이상은 보았던 것 같다.  아마 대가의 그림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그들의 문화가 반영된 데이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큐피드와 비너스의 알레고리, Agnolo Bronzino,1545



그렇게 온갖 수식어의 범람 속에 '나'와 클로이는 그렇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렇고 그런 관계’란, 서로 열심히 대하려 하지만, 예전과 같지 않은 심리적 관계를 말한다.  '나'는 클로이의 신발 등을 맘에 들어하지 않고, 클로이도 나의 딸기 잼을 바른 토스트를 먹는 습성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등 서로 조금씩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사소할 지언 정 이미 그들 사이에서 마음의 거리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그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식사자리를 준비하기도 하고, 같이 여행을 다니기도 하지만, 결국 전과 같은 뜨거운 애정은 느끼지 못한다.   그렇게 미지근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 문제의 시발점인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여행 중 서로 약간은 냉랭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돌아오는 런던 행 비행기에서, - 그렇다. 처음 그들이 만난 장소이다.- 클로이는 '나'에게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윌'과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윌'의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가게 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만, 가슴 내면의 심장은 이미 처참히 뭉겨지고 산산이  부서졌다.   참고로 '윌'은 회사 내에서 '나'와 상당히 친한 관계로 개인적인 문제를 서로 의논하기도 하고, '클로이'와의 초기 연예 관계도 '윌'과 의논을 하곤 했다.    
 
결국 '나'는 약을 집어삼키며, 자살을 시도한다.   자. 살.  놀라운 반전 아닌가?   그러한 지지부진한 사랑의 끝에서 자살을 택하다니.  그렇게 '나'는 '클로이'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클로이'에 대한 감정이 미안하리라 만큼 희석된다.  글에서 자살 후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수면제 대신 비타민을 몇십 알 집어 먹고 부글거리는 위액을 토해 내어 살아난 것 같다.  멍청하지만, 유쾌한 자살 미수다.  그러한 일로 죽으려 했다니 말이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25살의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다.  그때는 사랑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나이인 것 같다.  필자도 25살의 시기에 그러한 경우가 있었던 것 도 같은데, 그래서 허영만 선생이 그려낸 '비트'라는 영화를 미치도록 즐겨봤다.  영화를 보고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밤을 새운 적도 있고, 그냥 밤하늘을 보며 산책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를 들어가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결국   '사랑'은 시간이라는 용매에서 희석된다는 것이다.  애정이라는 마음을 관리하는 호르몬 분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치'를 넘어서 그 사람에게 익숙해지고-그래 질리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 호르몬이 줄어들어 그런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94년, 아무것도 모르고 방황하던 대학교 학창 시절 들었던 말이 하나 생각난다.
 
미안해.
 
가슴 시린 추억이었던 것 같은데,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6개월 된 아들과 그의 엄마를 보면 웃음이 나는 추억이고, 빛바랜 인화 사진과 같은 내용이다



이 글은 2009년 필자가 서울-광주 주말 부부 생활 중 작성한 글입니다.  당시 6개월이던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습니다.  주말 부부 생활도 마무리하고, 지금은 가족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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