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찾은 행운을 처음 본 나에게 선뜻 주겠다니!
바람이 불어온다. 형산강 둔치를 걷다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강바람에 몸이 흔들리니 마음까지 출렁댄다.
강변에 서 있으니 풀들이 초록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토끼풀이다. 여기저기에 모도록모도록 소담스럽게 모여 있다. 나는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눈으로, 손으로, 훑으면서 찾는다. 나폴레옹이 포병장교 시절에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고 한다.
그 뒤로 네잎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총알을 피해 살아남아, 훗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행운이 자신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 믿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유년 시절부터 토끼풀이 모여 있는 풀밭이 보이면 눈을 반짝이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습관적으로 네잎클로버를 얻기 위해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네잎클로버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럼 행복이라도 챙겨야지. 행복을 상징하는 앙증맞은 세잎클로버는 강변에 오보록하게 자라고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손바닥에 작은 잎을 나비 모양으로 펴놓고 들여다본다. 문득,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가 떠오른다. 마테를링크만의 철학이 담긴 대표작이자, 그가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작품이다.
나는 시공주니어 출판사에서 발간한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다. 동화인줄 알았는데 『파랑새』는 원래 희곡이라는 점이다. 국내 출간된 작품 대부분이 중역본이거나, 원작을 짧게 요약하거나 동화로 고쳐 쓴 각색본이다. 또 하나는 주인공 이름이 틸틸과 미틸이다. 내가 기억했던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일본어로 중역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으로 틸틸과 미틸은 행복이란 이름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한참을 찾아다녔던 파랑새를 마침내 집에서 찾게 되는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줄거리다. 내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제일 마지막이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내 품에 안긴 행복을 남에게 나눠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틸틸과 미틸은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파랑새를 기꺼이 준다. 안타깝게도 그 소녀의 품에서 파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주인공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얼마 전에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았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상북도교육청 영일도서관에서 특강할 때였다.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는 첫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다가와서는
"선생님, 이것 드리고 싶어요."
라면서 네잎클로버를 건너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네잎클로버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받기가 조심스러웠다.
"어머나, 이런 귀한 것을 나에게 줘도 괜찮겠니?"
자신이 찾은 행운을 처음 본 나에게 선뜻 주겠다니! 순수한 학생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내 마음이 행복했다.
조던 피터슨은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개념은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가 인류, 사회, 가족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어야 된다. 그런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면서.
그렇다면 내 생각에 파랑새를 찾아다는 것이 가끔 삶의 목표가 되어도 괜찮을 성싶다. 틸틸과 미틸, 네잎클로버를 선물한 학생처럼, 타인에게 행운이나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진다면, 조던 피터슨이 말한 삶의 목표에 근접하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