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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Aug 30. 2024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연일도서관은 앞마당이 공원과 잇닿아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연일도서관에 갈 때면 잔디밭 길섶에 심겨진 대추나무 앞을 매번 서성거린다. 초록 웃음을 머금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모습, 바람이 머물다간 자리가 일렁이는 나뭇가지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는다. 그러다가 한여름이 되면 대추가 알알이 익어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얼마 전, ‘여름방학 독서교실’ 강의하는 동안에도 대추나무를 만나는 게 좋았다. 그런데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배움도 소중하지만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연일도서관이 하루 동안 휴관에 들어가면서 나는 학생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다음날은 정상적으로 연일도서관에서 강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대추나무가 걱정되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서 살펴보았다. 거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부서지고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대추나무가 건너왔던 수많은 계절과 품고 있던 내력의 흔적들이 상실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마침 이번 강의 주제가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우리는 환경지킴이!’였다. 학생들과 지구온난화와 세계 이상 기후에 관해 수업하는 대목에서 태풍 피해를 입은 대추나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식물도 감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글쎄, 선생님도 궁금하네. 답이 뭘까?”

  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학생이 신이 나서 말을 했다. 동물처럼 눈과 코 등의 감각 기관이 없지만, 식물도 감각을 느낀다고 학교에서 배웠단다. 진지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      


식물은 촉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 파리지옥은 특정한 냄새를 뿌려 파리를 잎에 앉게 만든다. 파리가 잎 표면을 자극하면 촉각이 있기 때문에 잎을 닫아 버린다. 또한 잎을 닫았더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면 다시 잎을 열어 안에 갇힌 것을 버리는 데, 이것은 미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님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 

  “식물이 눈, 코, 귀 등이 없다고 오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입니다.”


  식물을 대할 때는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바라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학생의 눈길이 따스했다. 식물 자체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평소에 내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교육 강의를 할 때 예로 들고 있는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의 동화 『어린 요한』 중 '버섯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수필 연계 추천 도서: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

  '독버섯'이 나쁘다는 것은 사람들 '식탁의 논리'일 뿐 버섯세계의 논리가 아니다. 버섯은 버섯세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버섯세계의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존재로서 소중하게 대하고 그들의 언어로 평가하며 존엄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이 학생은 알게 되었을까? 나는 학생이 기특했다.


  나는 프리랜서 강사이기에 전형적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다. 1999년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라는 말로 인류를 표현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기쁘다. 그런데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는 것은 더더욱 행복하다. 그래서인가.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할 때 자신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 퀴즈, 심지어 무서운 괴담을 이야기해 주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밑줄을 긋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누군가를 만나러 집을 나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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