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
문틈으로 훔쳐보니 저 마루 끝에 앉아있는 아버지의 머릿결이 반짝반짝 너무 좋아 보이셨단다.
19살 엄마집으로 선보러 온 아버지에게 이렇게 엄마는 반하셨단다. 나중에 동백기름을 발랐다고 자수하셨지만 엄마의 픽은 탐스러운 머릿결이었다. 19살 동갑으로 만나 결혼하셔서 올해 88세 함께한 세월이 69년.
요즘은 한 명도 힘들다는 육아를 우리 엄마는 2남 4녀 6남매를 키우셨다. 어려서 기억하는 부모님은 티격태격 하시면서 전투적으로 사셨던 것 같은데
항상 아침에 일어나기 전 두 분이 누우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자식들 이야기, 일상적인 이야기, 그 두런두런 나누시던 소리가 지금생각해도 너무 정겹고 따스하다.
처음 엄마가 치매진단을 받으시고 엄마의 돌봄은 온전히 아버지 책임이셨다. 치매이시면서 소리 듣는 것도 안 좋으신 엄마 옆에서 아버지는 친절하지 않은 남편이었다.
소리를 잘 못 들으시면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면 되는데 아버지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아버지는 본인의 속상함과 힘듦을 자식들이 알아주었으면 싶었을 텐데 우리는 집에 갈 때마다 늘 엄마편이었다. '그때 감사하다고 고생하신다고 한번 안아드릴걸'
"아부지, 엄마가 아프잖아. 아부지가 참아야지요"
괜스레 아버지 탓만 했었다. 엄마에게 친절하지 않은 아버지가 그때는 야속했었다.
건강하시던 아버지도 오빠들과의 갈등 이후 말수도 적어지시고 우울증에 치매진단까지 받게 되셨다.
아버지까지 아프시고 온전히 부모님 돌봄을 책임져보니 그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아버지가 엄마 곁에 계신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일인지 알게 된 지금이다.
친철하지 않은 남편이지만 엄마는 늘
'남편 바라기'
좋은 게 있으면
" 니 아부지 드려"
식당에서 식사하시면서 아버지가 뭐라도 흘리면
"아부지 좀 닦아드려"
엄마의 시선은 늘 아버지에게 향해있었다.
최근에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식사도 못하시고 잘 걷지도 못하셨는데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엄마는 애가 타셨나 보다. 매일 오시는 요양보호사님께
"나 돈 좀 빌려줘봐요"
보호사님이
"할머니, 돈은 어디에 쓰시게요?"
"테레비에 나오는 거 사서 우리 할아버지 줘보게. 그래야 안 아프지. 우리 큰딸이 돈 줄 거여요"
아마도 홈쇼핑 등에 나오는 영양제나 몸에 좋은 약재광고를 보고 그러신 것 같다. 따님이 사 올 거라고 하니 안심을 하셨다는 엄마. 엄마에게 전부인 아버지가 아프시니 엄마는 애가 타셨던것 같다. 전보다 기억해내는것도 많아지시고 좋아하시던 술도 줄이시고, 당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신것 같기도 하다. 애닮음이 아니라 늘 행복한 마음만 가졌으면 하는데... 엄마의 바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