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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Jan 30. 2023

동백꽃 섬으로

 고향섬과 나와 친구들

"드디어 출발이야!”

구정연휴의 느긋함을 뚫고 대학 여동기 단톡방에서 친구의 탄성이 올라왔다. 트래킹을 즐기는 친구 몇이 연휴기간 거문도를 가는데 전날까지도 출발을 장담하지 못했다고 한다. 푸른 하늘 배경의 여수 선착장이 친구의 마음처럼 쾌활해 보인다.

 친구가 열심히 소식을 보내는 것은 작년에 나 포함 여럿이 가려다 기상 악화로 취소되었던 이유도 있고, 거문도가 내 고향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백꽃이 피었을까?”

“피었는데 많이 졌어. 내일 수월 산 등반 때 찍어 보낼게.”

 동백꽃 소식을 물으니 단톡방 여기저기서 나더러 섬마을 동백 아가씨라며 놀린다. 꽃은 좋아하지만 노래 속 동백아가씨는 글쎄다. 구성진 가락과 감정 넘쳐나는 가사는 내 타입이 아니고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트래킹 팀은 고향집이라는 식당에서 보양식으로 먹은 바닷장어국, 매생이 굴미역국 사진도 올리며 우리를 약 올렸다.

“해피 뉴이어! 고향의 동백꽃을 봐라~”

 음력 새해 아침은 영롱하고 뚜렷한 사진 속의 동백꽃이 반겼다. 혼자 혹은 여럿이서, 땅에서도 여기저기 피어있는 모습이 주홍빛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갈색 줄기를 배경으로 몇몇이 핀 모습은 프사로 삼았다. 친구들은 거문 초등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며 나를 대신해서 포즈를 취했다고 한다. 나를 대신해서라니? 거문도에서 태어났지만 초 1 때 뭍으로 건너와서 내 모교가 아닌 것을 모르는 것이다. 오전 트래킹 중에 야산에 홀로 핀 동백꽃 사진이 또 올라왔다. 

 도톰한 청갈색 잎 한가운데 오롯이 핀 녀석을 갤러리에 저장해 두었는데, 단톡방의 다른 친구가 그 사진 댓글에 “요거는 너 거” 하니 깜짝 놀란다. 무엇을 들킨 듯 부끄럽고 쑥스럽다. 정말 섬마을 동백 아가씨라도 되는 듯이. 마음속에서 얼른 반론이 솟았다.

 어렸을 적 동백꽃 먹고 따고 원 없이 부대꼈지만, 친구야 나는 광주 수창 초등학교를 졸업했어. 거문 초등학교를 나오고 그곳에서 처녀 시절을 보낸 동백 아가씨가 아니란다. 노래가사처럼 서울로 간 총각 선생 순정을 바쳐 사랑하다 수많은 밤 눈물로 지새웠던 아가씨가 있었겠지. 젊은 날 동백꽃 잎에 새겨진 그리움 바닷가에 별처럼 쌓던.

 그 아가씨도 이제 나이 들어 중년의 동백 아줌마 되었으리라. 민박집 여주인 정도의? 매생이 굴미역국 감칠 나게 끓여내며, 사랑했던 총각 선생 비슷한 얼굴이 별미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작은 설렘 느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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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보내준 사진 속의 보로봉, 목 넘어, 등대 길은 멋지지만 낯선 모습이다. 어린 시절 싸돌아다닌 그곳이 틀림없을 텐데. 동백꽃 섬을 떠난 후 나는 무슨 출생의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도 섬 태생인 것을 숨겼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 영국함대가 점령했던 역사적 섬이라 배운 후에 조금 안도했다. 내 고향이 적어도 무인도 가까운 섬이 아닌 것에. 꿈과 경계가 모호한 유년시절의 추억 속에 제복 입은 코 큰 이국 아저씨들이 아롱거리는 이유도 알았다.

 성년이 되어 훼손되지 않은 곳을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것을 보고 외딴섬 태생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가 사진을 연이어 올리며 자연 그대로라고 바다색 아름답다고 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마치 자신의 딸이 별 볼일 없다며 애써 겸손한 체하던 엄마가 아리땁다고 칭찬해 주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이 친구는 마터호른과 몽블랑까지 오른 트래킹 마니아 아니던가? 

 정결한 푸르름을 간직한 바다, 동백꽃 거느린 야생의 숲, 사진 속에서 보지만 내 고향 섬 참으로 어여쁘고 어여쁘다.

 언제쯤 가볼 수 있으려나? 서울 한가운데서 업을 하는 도시 여성인데. 헤일수 없이 수많은 사연 간직한 것처럼 왜 동백꽃 사진 한 장에 가슴 뭉클 상념에 젖는 것일까?

 이것도 일종의 첫사랑인가? 생애 처음 6년간의 동백꽃과 바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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