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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그리 세온 베어 (Hungry Seon Bear)

댓글시, 세온 작가님 <굶주린 곰의 일기>를 읽고

by 램즈이어

일요일은 항상 늦잠이지만

오늘 아침은 더 늦게 일어났다

밤새 뮤즈 본부와 실랑이하느라

학예의 여신 뮤즈는

사실은 아홉 명 복수라 그리스어로

무사이 라는데

제게는 왜 한 명도 오지 않나요?

초보 작가는 턱도 없습니까?

느릿느릿 브런치 카페에 도착하니

문우들이 벌써 모여 있다

오늘따라 모두 배우자님 은덕으로

서너 살 아가들 맡기고

임시 솔로의 몸이라나

오랜만에 영혼의 굶주림 채운

무용담 가득


두근거리며 <오펜하이머>를 봤는데

섬세한 연출이 쩔었어요

헬런 한프의 『마침내 런던』의 여운으로

런던 시내를 거닐었죠

갑자기 핑크빛 곰이 나타나

장중을 제압하다


아직 내 잠이 덜 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정리하기도 전에

헝그리 세온 베어의

입담에 빠져들다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어요

물아래 사는 동물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목관 협주곡 망라하고

산뜻하고 명랑한 선율에 취해

구름 위를 떠다녔죠

브람스 교향곡 4번은

음표들이 층층이 두텁게 쌓인 소리가 …

하염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언제나 끝이 날까

『몽테뉴의 수상록』『 빵자매의 빵빵한 여행』

『채링크로스 84번지』를 빌렸어요


드디어 끝이 나나 보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아유 배불러

모두들 재미남에 넋이 빠져

곰의 통통한 배를 바라볼 때

인프피(INFP)인 나의 직관 발동

어렸을 적 읽은 동화에

털북숭이 손에 밀가루를 발라

엄마 왔다 해도 믿지 말아야 한다

험상궂은 동물일 수도 있는 것

반대로

나는 곰이요 할 때

그걸 그대로 믿을 뻔했다니

뭔가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다

동물인 것을 부지런히 강조하는 분위기

온몸의 털이 시원해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

모차르트의 탄생은 인류와 동물 모두에게 축복이야

곰은 휘낭시에를 먹으며 키운 자신의 몸집을 생각하고

등등

헌책방 주인과 가난한 작가가

20년 동안 책을 매개로 나눈 편지글에 매료된 것부터

수상했다

피할 수 없는 증거는

브람스 교향곡 4번 선율에

저절로 시가 탄생한 것


쓸쓸한 가을

황량한 벌판에 신록을 잃은 채로 혼자 서 있는 메마른 고목

후반부로 가면서 고목이 울기 시작한다

꽉 찬 관현악이 나무의 울음을 대변한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일사불란한 현의 합주에

우수의 정점을 밟고 넘어서는 쾌감

오호라 확실하다

브런치 마을에 일요일 아침 나타난

헝그리 세온 베어의 정체

감쪽같이

가장 우둔한 동물의 모습을 하였으나

그는 아마도

내가 밤새 만나고 싶어 했던

아홉 명 무사이 가운데 한 명

서정시와 음악의 무사 에우테르페 이거나

무언극과 찬가의 무사 폴리힘니아

혹은

현악과 서사시의 무사 칼리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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