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마을에 타샤 튜더 부럽지 않은 정원이 있다. 많은 작가들이 오가며 나무아래서 꽃들을 바라보고, 야옹님들을 만나 기쁨과 쉼을 얻곤 한다. 어느 날 잠시 휴관의 팻말이 붙었다. 주인님이 어떤 사정이 생긴 것이다. 백록담 코스도 잠정 등반 휴지기 전까지 그 소중함을 몰랐듯 모두들 마음 한가득 아쉬움을 느꼈다.
어느 작가는 그 정원이 너무 그리워 그만 상사병이 나버렸다. 그가 8월 31일 대낮부터 열에 들떠 비몽사몽 백일몽 속을 헤매며 겪었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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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파이더 맨과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의 그물에 안겨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갈색 냥이는 자신을 삼색이 남편이라고 소개하며 영월의 오페라님 정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램즈이어님 병난 모습이 가여워 오늘 재상봉 행사에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눈매를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삼색이 아가 조로랑 쏙 빼닮았다.
“국화빵 父子 냥이시네.”
스파이더 냥이는 기다란 그물로 착착 빌딩숲을 헤쳐 나가다가 도심을 벗어나서는 강원도행 KTX 열차 지붕에 올라탔다. 몇 시간을 동 쪽으로 동 쪽으로. 태백산맥 줄기의 멋진 산세가 보이자마자 노랑 메리 골드 군락이 보이며 코스모스 틈새로 파란색 새집이 나타났다.
“아, 저기다!” 나도 모르게 낯이 익어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장미 덩굴의 커다란 정문이 아닌 어느 구석진 곳에 착지하는 게 아닌가?
“저희만의 비밀 문이랍니다. 냥이들 세계에서 이 정원의 주인은 저희 삼색이 네예요.”
삼색이와 노랑이, 까만 안경을 쓴 조로, 다른 아가 냥이 두 명이 도열해서 나를 맞이했다.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삼색이는 그림일기에서 보다 더 우아한 모습이다.
“오늘 행사에 잘 오셨어요. 좋아하시는 음악 연주도 있답니다.”
“와우!”
정원은 상상이상으로 넓어 마치 어느 아담한 산속의 숲에 들어선 기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그동안 무척 보고 싶었던 동물들도 어슬렁거린다.
“여기 VIP 석에 앉으세요.”
무대가 잘 보이는 로얄석 박스에는 이미 화려하게 차려입은 몇 커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호피옷을 입은 배롱나무와 호랑이 커플, 하얀 황후의 관을 쓴 칠자화와 늘씬한 기린 커플, 깜냥이와 수국.
아래층 일반석에서 두더지와 비비추 커플, 수탉과 달개비 커플도 보았다.
“조화와 순응의 반복 속에 새로움이 솟아나는 삼색이네 정원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또 이미 지난 계절, 봄으로부터 어렵게 와주신 동식물 여러분 감사합니다. 가장 특별한 두 분의 손님이 있습니다. 브런치 마을에서 우리 정원을 가장 사랑하는 작가님과 또 다른 한분인데…. 그분은 아직 도착을 하지 않으셨군요. 오늘 재상봉 행사에서는 이곳 식구와 외부인사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장기자랑을 선보이겠습니다.”
세 가지 갈색 톤으로 세련되게 빼입은 삼색이가 호스트로서 환영 인사 겸 행사 개시를 알리자 초록 병정 백합대(꽃을 진즉에 피워내서 줄기만 남은 애들)가 재빨리 무대에 등장했다. 드럼과 트럼펫으로 시원하게 팡파르를 불고 그 뒤로 이어진 순서는 다음과 같다.
** 꽃 분홍 백합, 흰 겹백합, 노랑백합, 주홍 백합, 빨강 백합: 목관 5중주를 연주하다.
** 분홍 배롱꽃 발레리나와 말벌 발레리노의 앙코르 공연: 발그레 앳된 얼굴로 멋진 아라베스크를 또 한 번 선보이다.
** 덩굴장미 합창단의 밀양 아리랑
** 서부 해당화, 담장장미, 사계장미, 찔레장미의 핑크 베놈: 블랙 핑크 보다 더 아찔하게
** 범부채꽃과 원추리는 부채춤을 선보이다.
** 오이꽃, 호박꽃, 카라: 노랑 song
이들이 노래를 끝낼 즈음 점점 한쪽 하늘이 연노랑 빛으로 환해졌다. 노래 때문일까? 생각할 때 삼색이가 흥분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귀한 손님이 이제 막 도착하셨습니다. 저기 동쪽의 슈퍼블루문이세요.”
모두들 그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잠시 넋을 잃었다. 동그란 자태가 너무도 엄위하고 고고하고, 은은하지만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막을 깨고 삼색이가 그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귀한 걸음 하셨으니 한 말씀 해 주시지요.”
호스트의 권유에도 그는 한참 우리를 바라만 보았다.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으며…. 우리도 음악회고 뭐고 다 그만두고 그 빛 아래 잠겨 있고만 싶어서 가만히 그를 우러러보았다. 아마도 인간 세상에서는 찰칵찰칵 핸드폰 촬영하느라 야단이 났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점점 그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맞다, 조용히 메아리치는 메시지는 분명 그의 음성이다.
‘삼색이네 정원을 축복합니다. 어서 행사를 계속하세요.’
다른 이들도 그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들은 듯 주섬주섬 음악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 블루매직 아이리스 : 강렬한 진보라 의상으로 조수미 뺨치는 목소리의 아리아를 부르다.
** 수선화 제비꽃 마가렛: 봄노래
** 관모를 쓴 도라지꽃과 초롱꽃: 국악 연주로 모두를 졸음에 빠트리다.
** 산딸나무, 매화나무, 겸손 송, 앵두나무, 공작단풍, 오동나무, 향나무 : 방탄 소년단 곡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다.
삼색이는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잘 아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으아리와 흙장미에게 배웅을 시켰다.
그 매혹적인 꽃들이 내게 건넨 작별 인사는 아트라베르시아모 (함께 건너갑시다)이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어려운 문제를 풀 듯 곰곰이 생각하다 꿈에서 깨어났다.
답을 못 찾아 알쏭달쏭한 채로 일어났지만 두통과 몸살은 간데없고 몸이 개운했다. 상사병이 어느 정도 치유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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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작가님의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에서 영감을 얻어 적은 글입니다. 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거기서 빌렸습니다. 곧 작가님의 그림일기가 다시 발행되어, 정겹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원합니다.
P.S. 대문 사진: 8월 31일 오후 8시 30분 서울의 슈퍼블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