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4일 동네 소공원의 300미터 트랙을 한 바퀴 처음 뛰었다. 그 후 일주일간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다. 제프 작가님 말씀대로 고교 졸업 후 처음 뛰었으니 과연 역사적인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15일 100m + 200m + 300m (쉬어가며 조각조각으로 뜀)
16일 300m
17일 900m
18일 700m + 400m
19일, 20일 각각 1000m
21일 700m + 600m
22일 1000m
거북이 체질인 나의 무의식 속에도 달리기에 대한 로망이 잠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무라카미 하루키 영향이 큰 것 같다. 그의 울트라 마라톤 뛰는 모습에도 반했지만『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은 후에 달리기를 하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글을 잘 쓰려면 달리는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은 달리기 편향의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브런치에서도 그 밖의 나 작가님과 이숲오 작가님 달리기 단상을 읽을 때 그 모습을 그려보며 아하 이렇게 멋지게 뛰시니 멋진 글이 나오는구나 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다가 제프 작가님 두 번째 달리기 글 맺음말이 숨어있는 심지에 불을 댕겼다.
달리기는 원래 느리다.
그렇다 치면 다른 사람 보기에 걷는 것 같은 나의 달리기 패턴이 전혀 문제가 안되지 않나?
달리기에 마음이 기우니 달려야 할 이유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달리기가 싫을 때는 달릴 수 없는 수 만 가지 이유가 생각나더니만. (인간은 역시 자신이 듣고 싶은 메시지에 귀가 열려 있나 보다.) 수반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도 착착 찾아졌다. 달리기와 무릎의 상관관계에서 레크리에이션 달리기는 무릎에 해가 안되며 오히려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읽었다. (몇 년 전에는 달리기 할 때 무릎에 전해지는 부담이 보행보다 4배 이상이라는 사실이 지레 겁을 주었다.) 나의 특기인 계획 세우기를 해보았다. 가장 마음 설레는 단계이다.
1. 목표: 2킬로 정도를 30분 내외로 매일 뛴다. (마감 기한 정하지 않음/ 마라톤은 절대로 뛰지 않을 거임)
우선 100일 안에 1km를 매일 뛰는 습관을 갖는다.
2. 달리는 이유:
숨기고 싶은 이유: 하루키 흉내라도 내고 싶다. 경쾌하게 뛰는 모습을 과시하며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공식적인 이유: WHO 성인 운동 권장 항목 중에서 고강도 운동(내 경우 최대 심박수 110-135 사이가 되는)을 경험해 보기
WHO 성인 운동 권장량(18세~64세) 1주일에 150분 이상 중간 강도의 유산소 운동 혹은 일주일에 75분 이상 고강도 운동
주 1회 헬스, 주 1회 필라테스, 주 2회 수영, 매일 5000보 내외 걷기(버스정류장 멀리 가서 타기)로 간당 간당 150분이 채워지지만 워낙 느릿느릿해서 중간 강도가 아닌 경우가 많다. 고강도 운동이 and 가 아니고 or 이긴 하지만 심폐 능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포함시키면 좋은데 그동안 실천 못함.
3. 고려해야 하는 상황 : 무릎
무릎은 지난 8개월간 주 1회 헬스 이후 허벅지 근육이 생겨서 이전보다는 덜 아프다. 계속 허벅지 근육을 강화하며 달리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공원의 바닥이 푹신한 트랙에서만 뛰다가, 무릎이 좀 견디면 호카라는 운동화를 사서 딱딱한 아파트 단지 내 길도 뛰어보련다.
4. 지속하기 위한 방법 : 다이어트할 때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고, 브런치에도 글을 올린다.
맨 위에 적은 8일간의 보고서는 소꿉장난 달리기 같아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큰 아들이 처음 걸었던 날이 생각났다. 돌이 지나서도 못 걷던 아이가 어느 날 휘청거리며 뒤뚱 한걸음을 내디뎠을 때 직립보행 인간에 합류했다는 기쁨이 컸다. 브런치가 있었다면 그날의 감격과 사진을 또르르 올렸을 것이다.
비슷하게 거북이 인간이 호모 러너스쿠스에 합류하는 첫 달음질도 짧은 거리지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