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램즈이어 Sep 23. 2023

나의 상대성 이론

인간은 비교하는 동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늘 어렵다.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 배대웅 작가님 글도 열심히 읽지만, 알 것도 같으면서 잘 파악이 안 되며 알쏭달쏭하다. 오히려 삶에서 명확하게 이해되는 다른 상대성 이론이 있다. ‘상대성’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출 때 ‘상대적 빈곤’에서처럼 피부로 느껴지는 사회 속의 상대성 이론이다. 


 큰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일이다. 지금은 중 1학년 시험이 없지만 그때는 중 1 첫 중간고사가 무척 뜨거웠다. 자녀의 향방을 좌우하는 시험이라느니, 그 성적이 고교까지 간다느니 하며 모든 어머니와 아이가 첫 중간고사 성적에 매달렸다. 둘레에서 중간고사 후 몸져누운 어머니들을 종종 봤는데 주로 자녀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였다. 큰아이가 중 1 첫 중간고사를 보기 전, 나는 앓지 않기 위한 대책을 세웠다. 도달하기 쉬운 목표를 정하고 그걸 아이가 달성하면 나도 마음잡으리라 결심하며.

“이번 중간고사는 반에서 5등 이내에 들어보렴. 그럼 엄마가 상을 주지~”

“그건 너무 쉬워요. 엄마! 나 일등 할래요.” 

 아들은 의욕을 보였지만 경쟁이 있는 학교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으면 자칫 낙망할까 봐 미리 배수진을 쳤다.   

“아니야. 여기 중학교는 수준 있는 편이야. 반에서 5등 이내면 아주 잘하는 거다.”

 아들은 열심히 해서 반에서 3등을 했다. 아이에게 작은 상을 주고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성취감을 맛보며 흐뭇해했다. 마음이 어렵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해서, 시험 후 마음 앓이를 안 한 것이 얼마나 뿌듯한지! 그런데 며칠 후 슬며시 아들의 초등 시절 절친 소식이 궁금해졌다. 

“철희는 이번 시험 잘 보았대?”

“네. 철희도 잘 보았어요. 철희는 반에서 일등하고 전교 3등이래요.”

“어? 그래….” 

 나는 내심 놀랐지만 태연한 척했다. 승부근성도 없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아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녀석! 친구는 전교 3등을 했는데 겨우 반에서 3등이라니….’ 

 아들에게 속마음은 표현 못하고 그날 밤 끙끙 잠을 뒤척이며 나는 상대성 이론을 실감했다.   

  

 몇 살 아래 이웃 이야기도 내 이론을 뒷받침한다. 그녀는 만날 때마다 여러모로 성에 차지 않는 듯이 아들 이야기를 했다. 스카이 대학쯤으로 기대했는데 서울의 무명 대학에 갔다느니, 반듯한 대학도 못 갔는데 밤늦게 까지 싸돌아다니기만 한다는 둥 늘 못마땅해했다. 초년생을 마치자 지금쯤 군대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마냥 대학생활의 재미에 젖어있다 성토하더니, 마음 준비도 채 안된 아들을 등 떠밀어 군대에 보냈다. 

 처음 몇 개월은 여전히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후방에 배치된 아들 군(軍) 근황을 들려줬다. 한참을 못 보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웬일인지 표정이 무척 밝았다.

“내참 별 일이에요. 글쎄 우리 아이가 군대에서 킹카라네요!”

“예? 킹카요?”

 자신 아이가 부대에서 재벌 집 아들로 소문나며 인간성 좋아 제일 인기가 많단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휴가 왔을 때 아들에게 따졌다고 한다.

“너 왜 또 재벌 집 아들 행세했냐?”

“행세라뇨? 상관이 조용히 불러서 물었어요. 너희 재벌 집 맞냐고.”

“그러면 아니라고 해야지!”

“당근 아니라고 했죠! 아버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그런데 왜 그런 소문이 나?”

“갑자기 상사가 서울 어느 동 무슨 아파트에 사냐며 집값이 얼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얼마라고 했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대강 아마도 몇 억은 넘을 것 같다고 했죠. 그 정도 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그러니까 상관이 악! 몇 억? 너희 재벌이구나. 재벌 집 맞네! 그랬어요.”

 그 내무반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는 사람도 자신 아들 밖에 없다고 한다. 대부분 그 지방의 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면회 가서 보니 인물도 우리 아들이 제일 훤하더라니까요?”

 아들 이야기 하면서 대견한 듯 함박 미소 짓는 것은 처음 보았는데, 아무래도 상대성 이론이 작용한 것 같았다. 

 나의 만족이 가까운 이들의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처럼 변한다는 가설은 별로 뾰족하지도 않고 싱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누구나 생활 현장에서 부대끼며 실감하는 생생한 이론이다. 아주 쉽게 이해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에 사실 이것을 상대성 이론이라 이름 짓고 물리학의 아인슈타인 것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은 비교감에 따른 상대적인 행복을 설명하는 정도지만 앞으로 빛처럼 절대성을 갖는 그 무엇 - 예를 들면 자족하는 마음이랄지 - 을 포함해서 더 그럴듯한 상대성 이론을 펼쳐봐야겠다.     


---

 윈지 작가님의 <비교의 늪, 나만 이런가>를 읽고, 하나가 아니라 다른 하나가 더 빛나는 그 점을 잘 봐줄 수 있는 긍정의 비교도 배웠습니다. 비교하는 시간이 1이라면 사랑하는데 쏟는 시간은 100000000000이었음을 아이들이 알 것이다라고 쓰신 감동의 댓글도 읽으며. 

 오래전에 쓰고 서랍에 묵혀둔 글이 생각나 퇴고하여 발행해 봅니다.


대문 그림: Yasuhito Kawassaki <On the Table> acrylic on canvas, 2023 서울 키아프 전시


작가의 이전글 하루키 흉내를 내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