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거북이 달린다 (3)
동네 소공원 300m 트랙을 한 바퀴 뛰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저녁 8시경 처음 나갔던 날이다. 그 시간은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시간인지 트랙에 허다한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중간중간 뛰는 사람도 보였는데, 도저히 그 인파를 헤집고 뛸 엄두가 안 났다. 내 달리기 모습은 일반적이지 않고 언니들 말마따나 가관이라니까. 일단 후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한참을 고민했다.
‘내일로 미루다 가는 영원히 시작할 수 없다는데….’
날짜가 넘어가기 직전 11시 50분경 다시 나갔다. 트랙에 한 두 명의 사람이 걷고 있고 등나무 아래 두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담소 중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편해져서 살금살금 한 바퀴를 뛰었다. 겨우 300미터만 달렸는데도 피 냄새가 나는 듯하고 헉헉거리며 숨 고르는데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일단 시작했다는 것과 달리기가 된다는 것이 뿌듯했다.
한밤에 달리러 나갔다 온 것을 알고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자꾸 안전을 염려했다.
“사람이 많든 적든 초저녁 시간에 그냥 뛰지 않고~. 당신은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문제야.”
매사에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성격인 데다 뛰는 모양새가 이상할 거라서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간 사람이 없을만한 오후 시간대를 찾아 이 시간에도 뛰고 저 시간에도 뛰어 보았다. 저녁 준비 시간이 사람이 뜸한 것 같은데 나도 식사 준비를 해야 했고, 밤늦은 시간은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 버리니 문제였다.
아무래도 아침 일찍 일정하게 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마음먹고 새벽 7시에 일어나 보았다. (어떤 분들에겐 이 시간이 새벽이 아닐 것이지만.) 아침형 인간이 어찌 그리 많은지 초저녁과 큰 차이가 없는데 그렇다고 더 일찍 일어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다섯 번째 날은 1000m를 채워 볼 요량으로 처음부터 속도를 많이 줄여 보았다. 마지막 남은 바퀴에서 고만하고 싶었을 때 자신을 달래며 그저 엉금엉금 달리자 했더니 순간 관성의 법칙 같은 것이 적용되며 쉬어졌다. 처음으로 쉬지 않고 1 킬로미터를 채웠다. 숨 고르기 하려 걷는 단계로 넘어갈 때 한번 휘청 했지만 여간 감개 무량한 것이 아니었다.
9월 14일부터 25일까지 12일 동안 1000미터를 뛴 날은 총 5일, 다른 날은 조각조각으로 1킬로를 채웠다. 시간을 재면 10분에서 15분 정도밖에 안 되는데 무척 오랜 시간을 달린 것 같다. 처음 100미터 구간에서만 헉헉거림 없이 살랑거리는 바람과 부대끼는 상쾌함을 맛보았다. 이 행복한 구간이 300m, 1km로 점점 길어질 수 있을까?
6일간 달린 보고서로 글을 발행한 후 아침에 일어났을 때 깜짝 놀랐다. 예상외로 밤사이 무척 많은 라이킷과 성원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마음이 고무되어 기쁨으로 달리러 밖에 나가려는데 창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당신 달리러 갈 거야?”
“당근 달려야죠. 비옷 입고.”
노란색 기다란 비옷을 주섬 주섬 꺼내오자 남편이 또 놀란다.
“정말 그 옷 입고 뛸 거야?”
“왜? 이 옷이 어때서?”
남편은 놀람 반 미소 반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보나 마나 ‘너무 튀잖아!’ 하는 거다.
주객이 완전 전도 되었다. 다른 사람 시선을 생각하는 쪽은 나였는데, 남편으로 바뀌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브런치 문우들 응원에 사기 충천하여 평소의 주변 살피는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린 것이다. 오히려 오버하는 마음이 되어 원색의 비옷을 입고 엉금엉금 달릴뻔했다니….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집에 들어와 모자와 방수기능의 얇은 잠바로 바꿔 입었다. 아침부터 등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비구경하는 어르신들의 눈총을 받으며 뛰었다.
우중런을 하고 나니 용기가 생겨서 차츰 남의눈을 덜 의식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트랙을 향했다.
순적하게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있었다. 서늘한 가을이 찾아온 것, 집에서 5분 거리에 300미터 트랙이 있는 것, 초보 러너를 인도하는 스승의 존재, 이 세 가지다. 얼마나 감사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