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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Nov 04. 2023

그 사람의 아티스트

짝사랑 남(男)과 재니스 조플린

 주로 클래식 곡을 감상했던 나는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플리를 올릴 때 참 좋다. 채 몰랐던 아티스트들의 세계를 접하면서 진즉에 주옥같은 곡들을 알지 못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 가운데 가끔 70- 80 시대의 노래가 나오기라도 하면 잠시라도 젊은 날의 회상에 젖곤 한다.

 엊그제는 좀 더 오래 그 시절에 머물러있다가 그때 즐겨 듣던 몇몇 곡들과 더불어 어떤 사람이 생각났다. 대학 초년 시절 좋아했던 급우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편이 이 글을 읽을 까봐 조심스럽다. (현재 브런치에 별 관심이 없어 다행이지만 어느 날 이 글이 삭제된다면 남편의 침공으로~)

 까무잡잡하고 둥글납작한 사람은 창백하고 서구적인 얼굴에 끌리고, 모범생 스타일로 감히 어떤 일탈을 못하는 족속은 자유로운 영혼을 동경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는 잘 알지 못하면서…. 짝사랑의 위험성과 낭만은 그 불확실함에 기인하는 것 같다. 제대로 접근해서 현실 파악을 못한 채로 멀리서 자기 마음대로 이상화(理想化)의 모래성을 쌓는.

 제임스 딘보다도 더 하얗고 헤매는 낯빛의 못 보던 남학생을 발견했던 날이 떠오른다. 마음에서 설렘과 경이로움의 파동이 일었던.

 짝사랑으로 서성이던 그 시절 미셀 크레투의 <moonlight flower>는 내가 즐겨 듣던 곡 중 하나다.

https://youtu.be/3 RIYpXyp1 oM? si=x1 WIEhTeqgaOpCgp

 그 사람은 까뮈나 사르트르, 랭보의 친구처럼 보였다. 그의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실존, 허무등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해 보였고 결강(缺講)을 밥 먹듯 했다. 그때는 대리 출석이 가능할 때였는데 교수님이나 조교는 모르고 넘어갔지만 그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식별하는 나를 속일 수는 없었다.

 사람이든 소설이든 반전이 중요한 것 같다. 깜짝 놀랄 정도의 의외성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나의 판타지 속에서 영웅으로 자리매김 한 시점은 기말 시험 때였다. 범위도 가장 많고 어려운 과목 시험 시간에, 나를 포함 모든 친구들이 끙끙 앓고 있을 때, 아직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 사람이 느닷없이 나간 것이다. 처음에는 시험 준비가 부실해서 씨름하다가 포기하고 나가는 줄 알았다. (그 사람에겐 이 레퍼토리가 어울리니.) 그런데 그다음에도 대부분의 과목을 상당히 이른 시간에 답안을 제출했다. 나중에 보니 악명 높은 재시험 명단도 사뿐히 피해 가지 않은가? (다들 한 과목 정도 걸리곤 했는데) 천재 비슷해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는 현란한 기타 선율로 유명하지만 가사의 어떤 향락적인 은유가 그 사람 분위기이기도 했다. 무디 블루스의 <멜랑코리 맨>은 딱 그 사람의 독백 같았다.

 https://youtu.be/FPqXQkyz6RM?si=7Y3yG_hcEHrgatI5


 짝사랑의 대부 단테 알리기에리는 베아트리체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아마 그래서 위대한 문학작품이 탄생했을 것이다. 단테에게 위로받기도 하고 그분에게 뻐기고 싶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아서….

무척 땡땡이가 쳐보고 싶어 과감히 수업을 제끼고 교문 밖을 배회하던 날 그 사람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어서 반갑기도 하고 멋진 모래성이 하나하나 허물어지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만남이었다. 그 사람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이나 문학에 문외한이었고, 나의 플리 위의 곡들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재니스 조플린. 아마 잘 모를 거예요.”

 그로부터 재니스 조플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60년대 말 히피문화를 대표하는 록 보컬리스트로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요절했다는…. 그녀의 음반을 당장 구입해서 들어 봤는데 혼이 담겨 있고 열정적이었으나, 갈라진 거친 목소리에 <써머 타임> 외에는 낯선 곡뿐이었다. 사진 속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 옷차림, 허스키한 목소리 등이 그 사람과 비슷했다. 좋아해 보려 애썼으나 절규하는 듯한 노래는 그 시절 감당하기 퍽 힘들었다.

 추억 소환을 하며 재니스 조플린의 곡들을 다시 들어 보았는데, 웬걸 그때와는 다른 친밀감으로 다가왔다. 즐길만한 사랑스러움으로…. 나이 때문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동안 브런치에서 제프 정 작가님이 소개한 곡을 접하며 영역이 확장된 덕분인 것 같다.

 제니스 조플린은 27세 요절 아티스트 클럽에 속하며,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과 함께 three J로 불리운다. 글쓰기 선생님의 권유로 첫사랑(짝사랑)에 대한 글을 지었을 때 내 글의 제목도 J였다. 그 사람의 이니셜을 따와서.


https://youtu.be/5Cg-j0X09Ag?si=anH-NhqAQEud4198



 ** 대문의 그림: 칸딘스키의 <Taut at an Angle>1930, oil on card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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