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중년 아줌마 비엔나 지하철 모험

비엔나에서 쪽 팔리게

by 램즈이어

20대나 30대에 유럽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을 하신 분들은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 좀 부끄럽기 때문이다.

여동생과 일주일간 미술관 위주 비엔나 여행을 계획했지만 부다페스트까지 기차로 2시간 40분밖에 되지 않아 이틀 반은 헝가리에 할애하기로 했다. 총 3일 반나절 정도 비엔나에 머무르며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빈 중앙역 지하 역사에서 72시간 프리패스를 17유로에 구입했는데 3일간 지하철과 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다. 우리가 이 차표를 처음 이용한 것은 빈 중앙역에서 벨베데레 궁전을 가려고 탄 버스였다. (걷기에는 좀 예매한 거리여서.) 버스를 타며 운전기사에게 열심히 티켓을 보여줬는데 아랍계 여성 기사의 반응이 의외였다. 매우 귀찮다는 듯 짜증스러운 표정. 가만히 보니 모두들 타면서 티켓 같은 것을 도통 제시하지 않았다. 이건 무슨 시스템일까?

이 경험이 그다음 우리가 지하철을 이용할 때 영향을 주었다. 프리패스를 구입한 후 사용을 개시할 때 치하철 타는 계단 시작 부분의 개찰 기계에다 펀칭하여 날짜와 시간을 찍어야 하는데…. 그 기계가 시원스레 작동하지도 않고, 아무도 그 기계 앞에서 뭘 하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도 그냥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서 두근거렸지만 3일간 막힘없이 환승도 하며 잘 다니고, 서울 보다 동선이 짧아 좋다고 생각했다. UI U4를 거쳐 쇤브룬 궁전까지도 찾아가니 마음이 여간 뿌듯하지 않았다. 다만 내리기 전에 벨을 눌러야 하는데 저절로 도어가 열리는 줄 알고 놓치기도 하고, 자동벨이 없는 전철은 손잡이로 열어야 하는데 손잡이 작동이 어설퍼서 당황하기도 했다.

지하철 역사에서 탈 때와 나갈 때 몇 개의 작은 개찰 기계 빼고는 아무런 체킹 시스템이 없어서 우리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비엔나는 교통에 참으로 너그럽구나. 알아서 표를 구입하면 되고 어려운 분들은 무임승차도 눈감아 주나 보다. 가끔 개찰구 앞에서 표를 찍으려고 낑낑 거리는 연로한 관광객을 보고서는 '꼭 그 기계에 찍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잘못된 정보에 의한 섣부른 결론인 것을 모른 채.

티켓 구매 기계에 영어 안내도 있다 / 처음 사용할 때 이렇게 펀칭을 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슴


이 어설픈 결론에 근거해서 비엔나에서의 마지막 밤에 우리는 색다른 모험을 했다. 헝가리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은 아무런 여정이 없었는데 칼스 플라츠 지하 역사의 한국 분식점 음식을 또 한 번 먹고 싶어졌다. 빈 중앙역의 호텔에서 U1 노선으로 두 정거장이면 되어 우리는 별 거리낌 없이 티켓을 사지 않고 다녀왔다. 여전히 체크하는 사람이 없어서 별 양심의 동요 없이, 일종의 성공한 완전 범죄로서.

떠나는 날 원래는 11시경 동생과 함께 체크 아웃을 할 참이었다. 미국으로 떠나는 동생보다 나는 5시간 정도 늦은 출발인데, 혼자 비엔나 시내에서 뭘 해낼 용기가 없어서 공항에서 책을 보거나 브런치 진도를 좇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동생이 웹체크인이 잘 안 된다고 더 일찍 공항에 가기를 원하며, 나더러 못 가본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용기를 내서 홀로 가보라고 했다.

오전 8시 45분경 호텔 코앞의 빈 중앙역 역사에서 몇 가지 선물을 사고 지하철 1회 티켓을 1.5유로에 구입해 두었다. 그냥 타도 될 것 같았지만 뭔가 찜찜해서.

동생은 10시경 호텔을 떠나고 나는 11시경 체크 아웃을 하며 짐을 호텔에 맡기고 혼자 빈 시내로 나섰다. 동생과 여러 번 탔던 지하철인데 처음 타는 것처럼 뭔가 걱정스러웠다. 왕궁에 있는 알베르티나 미술관은 U3 헤렌가세 역이 가장 가깝지만 환승하기 싫어서 칼스플라츠 역에서 걷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개찰은 무시하고 U1에 무사히 탑승, 두 정거장 지나 내려서, 오페라 극장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 홀로 비엔나 시내를 나선다는 미세한 설렘 속에 지하에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오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에 쿵, 가슴이 급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네 명의 경찰이 나란히 서서 네 줄의 라인을 만들어, 나가는 승객들 티켓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성을 발동하니 우리의 무임승차는 어젯밤 말끔히 끝났고 오늘은 새로운 날, 나는 티켓을 사두지 않았던가?

내면의 요동을 감추고 떳떳이 티켓을 제시했는데 젊은 경찰관이 얼굴이 굳어지며 뭐라 뭐라 서투른 영어로 한참 연설을 했다. 어제 일은 들킬 수 없다는 사실을 되뇌며 정신줄을 바짝 당기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니 개찰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거 같았다. 이럴 땐 더 당당해야 할 것 같아서, 뭘 잘 모르는 관광객인 척 내가 뭘 잘 못 했느냐고 정중히 물었다. 실제로 뭘 잘 모른 관광객이기도 했으니.

내가 티켓을 산 시점은 8시 45분, 지금 시각이 11시 30분인데, 개찰을 안 했으므로 아침 시간부터 여러 군데를 오간 것으로 간주해서 원래는 백몇십 유로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했단다. 나의 호텔 이름, 체크 아웃한 시간을 묻고 다음번엔 지하철 처음 탈 때 꼭 기계에다 시간 펀칭을 하라고 훈계를 단단히 듣고 풀려났다. 휴~

혼쭐이 나고 나니 조심스러워져서 미술관에서 나의 일회용 티켓에 대해 구글로 세밀히 알아보았다. 한번 내려서 쉰 후에는 또 쓸 수 없는 종류였다. 돌아갈 때 티켓 점검이 없을 것은 뻔한데 (빈 중앙역은 여간 붐비는 게 아니므로.) 그래도 모범적으로 또 한 번의 일회용 티켓을 구매했다. (모범적이기보다는 정상적인 일)

쪽팔리는 경험이었지만 잘 모르는 일에 대하여 섣부른 추론을 내서는 안되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선로의 벽면/ 이렇게 나오는 곳에 그날 검표 경찰관이 각 라인마다 네명 서있어서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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