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쟌니 스키키

비엔나에서 우아하게

by 램즈이어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내부 가이드 투어도 있었는데 이왕이면 오페라까지 보기로 했다. <라 트라비아타> 는 이미 매진이어서 표가 남은 토요일 7시의 <일 트리티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오페라 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입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환불 불가의 표로 예매되었다. 세 시간이 넘는 푸치니의 3부작은 여간 부담되는 것이 아니어서 구매 후에도 고민이 되었다. <쟌니 스키키> 이외의 나머지 두 개를 잘 모르니 이번 기회에 관람을 하자, 밀폐 공포증 있으면서 꿈이 너무 큰 거 아니었나 하는 갈등이 계속되었다. 역시 마지막 퇴로인 인터미션을 생각하고 마음을 잡았다. 영 힘들면 중도에 그냥 나와 버리자 하면서.

일 트리티코(Il Triticco)는 세 폭짜리 그림(3면의 제단화)을 뜻한다. 세 개의 단막 오페라를 모은 3부작으로 푸치니가 대중에 영합하지 않고 오페라 작가로서 예술성을 발휘하려 애쓰며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다. 단테 <신곡>의 지옥 연옥 천국을 모방해서 <외투>는 살인을 주제로 한 삼각관계에 의한 치정극, <수녀 안젤리카>는 자살을 소재로 한 종교 신비극, <쟌니 스키키>는 자연사 후 유산분배를 통한 현실구원의 해학풍자극이다. 각각의 스토리가 독립적이지만 어두운 분위기에서 밝은 쪽으로 가도록 구성되었다.

국립 오페라 극장은 U1 칼스 플라츠 역에 내려서 oper 라고 적힌 입구로 나오면 계단에서 올라오자마자 바로 극장 건물이다. 궁전처럼 고풍스러운 천장과 샹들리에 아래로 카펫 계단 위를 올라가서 표를 제시했다. 검은 정장 차림의 꽃미남 젊은이 둘이 경비병 스타일로 서 있다가 정중히 미소 지으며 자리 구역을 알려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눈에 띄는 칵테일 드레스 차림의 여성들도 종종 보였지만 대부분 평범한 드레스에 캐주얼 정장 차림이다.

프로그램은 더 들어가 자리 쪽 복도에서 연로한 신사분이 몇 유로를 받고 팔며 세밀히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막이 오르기 전의 무대는 커튼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 실린 커다란 천이 가리고 있다.

막이 오르자 맨뒤의 암흑 가운데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sein(존재), schwer(무거움), glück(운, 운명)의 글자가 보였다. 인간의 욕망과 고뇌와 죽음을 관통하는 오페라 주제를 암시하는 것이리라.

<외투>는 센 강을 오고 가는 화물 운반선 위의 늙은 선주와 젊은 그의 아내, 짐을 나르는 일용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줄거리는 무겁고 무대는 누추하지만 영혼을 흔드는 주옥같은 아리아가 여럿 있다. (그래서 클래식 애호가들은 <외투>를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젊은 인부 루이지의 테너 아리아가 인상적이었다. 술만이 인생의 괴로움을 잊게 해 준다며 계속 들이키는 술꾼 틴카에게 루이지가 당신 말이 옳다고, 매일 열심히 노동을 해도 시간은 흐르고 사랑은 허비된다고 탄식하는 내용이다.


<당신 말이 옳아요> Hai ben Ragione


당신이 옳소 생각 않는 편이 더 낫지

그냥 머리를 숙이고 등을 굽히시오

우리에게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소

모든 기쁨은 고통으로 바뀌지

등 짝 위에 자루를 메고 눈은 땅바닥으로

고개를 들었다가는 채찍을 조심해야지~

땀을 흘리며 빵을 벌지

그리고 사랑을 위한 시간은 빼앗긴 것이 틀림없어 ---

모든 것들은 다퉈야 하고 결국 우리는 뺏기고 말지

아침 시작부터 하루는 벌써 어둡기만 하지

당신이 옳소

생각 않는 편이 더 낫소!

그냥 우리 머리를 숙이고 등을 굽힙시다.

처절한 가사에 예쁘고 강렬한 멜로디가 실려있다. 그래서 절규하는 체념의 외마디가 좀 다르게 다가온다. 일종의 언밸런스로…. 이 짧은 테너 아리아를 성악 발표회 때 종종 부르곤 한다는데, 가사와 배경을 모른 채로 듣는다면 사랑을 구하거나 놓쳤거나 하는 내용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극 중 주인공이 울부짖는 내용과(사회적 클래스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관객들이다. 비싼 표를 구입해서 잘 차려입고 토요일 저녁 오페라 관람을 하는 이 자리의 사람들은 그들의 애환을 진정 알까 하는. (나를 포함해서)

<외투>의 등장인물들이 인사하는 장면

<수녀 안젤리카>에서도 거장의 능력이 한껏 발휘되어 무척이나 고운 서정 비극의 아리아가 펼쳐졌다. 멜로디와 가사가 합세하여 눈물을 자아내며…. 자신이 낳은 아이가 세상을 떠났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부르는 안젤리카의 소프라노 <아가야 너는 엄마 없이 세상을 떠났구나>부터는 펑펑 눈물이 쏟아져서, 우느라 피곤함이나 불안증, 폐쇄 공포증 등이 사라져 버렸다.

<수녀 안젤리카>의 등장인물들

<쟌니 스키키>는 현대적으로 해석한 무대라 침대도 없이 의자 하나에서 모든 것을 소화하려는 것 같았다. 마침내 삼부작의 하이라이트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O mio babbino caro>가 나오자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에서 이 노래를 듣는구나 싶어 감개무량했다. 한편으로 조수미의 실력에는 못 미치는구나, 아버지에게 자신 결혼 이루어지지 않으면 베키오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는 내용이 이토록 감미로울 수 있을까 하는 딴생각을 했다. 이후로 뾰족한 아리아가 없으니 밀렸던 잠이 쏟아져 내렸다. 귀여운 동물 분장을 이용해서 우화적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데 몰려오는 졸음 때문에 도대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툭 툭 떨어트려가며 졸았다.

돌아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오페라 극장에서 나온듯한 드레스 차림의 여성들을 꽤 보았다. 거의 11시가 다되어 숙소를 향하는데 잠은 다 깨어 총총한 정신에 피곤함도 달아나 있었다. 큰 숙제를 마친 듯 뿌듯했다.


대문의 사진: 쟌니 스키키와 라우레타와 리누치오가 마지막 인사하는 장면


https://youtu.be/YWPUBD4wH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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