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를 좇아

비엔나에서 문학적으로

by 램즈이어

지난 독서 모임에서 오스트리아 작가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 발제를 맡았다. 비엔나가 배경이고 피아노 치는 여자가 주인공이라 낭만의 도시를 배경으로 피아니스트의 어떤 로맨스를 그렸으려니 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자전적 성격의 이 작품은 딸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어머니와 그에 억눌려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보이는 딸 에리카의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이 쇼킹해서 읽을수록 놀람의 연속이었는데 근래에 그처럼 이상하고 독특한 책은 처음이었다. 읽는 내내 생소하고 난해하고 불편해서 혼났다.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관음적이며 수동 공격적이고 자학적인 피아노 교사 에리카와 욕망이 넘치고 이기적이며 미숙한 제자 클래머 사이의 사랑의 태동(사랑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면)과 결말이 전개된다.

아동학대에서 시작해 노골적 성애묘사가 나오니 포르노를 접한 듯 낯 뜨거워 어쩔 줄 모르다가 성장애 환자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괴로워서 책을 덮어 버렸다.

발제를 취소할 수도 없어서 간신히 마음을 잡고 다시 읽기를 계속하니 자해의 장면 등 점입가경이다. 눈뜨고 차마 볼 수 없는 폭력 영화 같아서 또다시 책을 덮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펼치고 덮고를 반복하다가 휴!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의 뿌듯함과 안도감이라니. 그래도 마지막 부분은 고립된 여성의 내면을 묘사하는 심리 소설로 넘어가 있다.

작가가 노벨상 수상자라, 노벨 문학상은 성(性) 묘사에 과감한 작가에게 수여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방대하고 깊이 있는 음악적 이해와 문학과 심리학을 버무릴 수 있는 능력이 돋보이긴 했지만.

문체가 사춘기 소녀들 대화처럼 예리하고 톡톡 튀는 듯 발랄해서 좋았다.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을 파헤침은 프로이트를,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의식의 흐름을 좇는 스타일은 프루스트를 생각나게 한다.

에리카는 이른 유년 시절부터 그러한 악보체계에 묶여 있었다. 그 다섯 개의 선은 그녀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그녀를 지배해 왔다. 그 다섯 개의 선 이외에는 어떤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그 패턴은 어머니와 힘을 합하여 ‘규칙’, ‘규정’, ‘명령’이라는 찢어지지 않는 그물로 정육점에 걸린 분홍빛 햄처럼 에리카를 돌돌 말아 놓았다.

어머니의 혹독한 악기 연주 훈련은 주인공 에리카의 현재를 만들고, 작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제공해 준 경험이다.

마지막 다섯 페이지 정도가 마음에 들었다. 긴 세월 동안 모든 것에 문을 걸어 잠그고 고립되어 살아왔던 에리카가 어처구니없는 사랑의 결말을 얻은 후, 이제라도 한번 담장 밖으로 화려하게 나서 보려는 장면이다.

Hans Makart <Modern Cupids> 1868, oil on canvas, Leopold Museum Wienna

우스꽝스러운 미니스커트 차림의 에리카가 복수의 칼을 지니고 처음 집 밖 외출을 시작할 때 행인들은 쑥덕거리며 젊은이들은 에리카의 외모를 비웃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제대로 된 알맹이가 없는 그들의 내면을 비웃고, 조롱을 되받아 더욱 비웃어 준다.

작가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상징들이 흥미롭다. 눈부신 햇빛, 클래머를 포함한 비엔나 공대 젊은이들의 웃음과 어둡게 웅크린 에리카의 내면이 대비된다. 마치 화가가 빛의 음영(陰影)과 보색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에리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상한 결말을 안겨준 애인 클래머는 금발의 여학생 어깨를 잠시 감싸고, 사도마조히즘이 치유되지 못한 에리카는 어떤 능동적인 행동은커녕 그 칼로 자신의 어깨에 상처를 낸다. 결국 거미줄 안의 거미처럼 집으로 향하면서.

에리카의 짧은 나들이는 비엔나 중심지 칼 광장 주변에서 펼쳐지는데 그곳은 늘 나의 다음 여행지 1 순위로 꿈에 그리던 장소였다.

발제를 하며 비엔나에 가면 그 광장을 거닐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지경을 넓혔던 그 걸음걸음을 따라가 보리라 염원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지난 10월 연휴에 비엔나에 갈 수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에리카가 처음으로 대중과 맞닥뜨리는 박물관이 늘어선 광장,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동상, 오페라 하우스 앞 교차로를 여러 번 오갔다. 왕궁과 미술관 투어를 하다 보면 절로 그렇게 된다. 몇십 년 전에는 좀 아늑했을지 모르겠는데 에리카 코후트가 사회적인 첫나들이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번잡한 장소였다. 그녀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들을 생애 처음 느끼며 마음속으로 환성을 올리기에는 좀…. 커다란 관광객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제과점 <아이다>는 놓쳤지만 40년이 지났어도 건재하는지 구글 지도에서 안내가 나온다.

저자가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다고 묘사한 칼 교회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심리학적인 암시를 넣고 싶은 까닭이었을 것이다. 바로크 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교회라는 명예에 어울리게 고고하며 위풍당당했다. 유켄트슈틸 미술관으로 표현된 제체시온 건물의 잎사귀 모양 지붕을 보며 에리카는 칼날이여 춤을 출지어다라고 속삭였으나 나는 지하의 클림트 연작 <베토벤 프리즈>를 볼 시간이 없어서 아쉬워했다.

레셀공원으로 걸어와 공과대학을 바라보면 두 가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엔나 공대 건물이 왕궁 못지않게 고풍스럽고 멋져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한편 에리카에 대한 연민이 솟아난다.

여자는 목을 옆으로 틀고 병든 말처럼 이를 드러낸다. 누구도 그녀 어깨에 손을 얹어 주지 않고 --- 치솟는 분노도 울화도 열정도 없이 자기 어깨에 칼을 꽂는다.

지퍼가 다 채워지지 않고 조금 열려있는 에리카의 등은 점점 강렬해지는 햇볕 때문에 피부가 살짝 익는데 23년 10월의 태양도 동일했다. 나는 선글라스가 고장 나서 너무 눈이 부셔 난감했다. 역사적이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핫플레이스를 배경으로 성인아이 내면의 모습, 처절한 사랑의 결말을 담담히 스케치한 작가의 예술성을 바로 그곳에서 느끼는 감회가 컸다.

카를 교회와 인접해 있는 비엔나 공과 대학
제체시온(Sezession) 건물/ 은색의 글자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예술의 자유를


** 1983년 출간된 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는 2001년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 의해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피아니스트>로 만들어졌다. 영화가 책 보다 다소 부드러워 수용할만하다고 한다.

대문의 사진 속 조각 작품: 아서 슈트라서의 <눈물 단지>

Arthur Strasser <Jug of Tears> 1888, Bronze, Leopold Museum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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