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클루스와 AI
『파우스트 2』에 나오는 인조인간
파우스트 2권 2막에서는 호문클루스가 등장한다. 파우스트의 방에서 조수 바그너가 여러 차례의 실험 후에 성공한 인조인간이다. 수백 가지의 물질을 혼합해 인간의 원소를 적절히 구성하여 시험관 속에 넣어 밀봉하고 적당히 증류시켜서 은밀히 그 일을 성취했다고 한다.
바그너: 지금껏 자연이 유기적으로 만들어 내던 걸 우리가 결정(結晶)을 시켜 만드는 것이지요. 위대한 계획은 처음엔 미친 듯 보이는 법입니다. 탁월한 생각을 하는 두뇌도 앞으로 사상가가 만들어 낼 것입니다.
드디어 시험관에서 빛을 내며 한 군데로 모이네요. 유리관 안에서 귀여운 모습으로 곰지락 거리는 조그만 인간이 보입니다.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저것이 소리가 되고 말이 될 것입니다.
호문클루스: 안녕하세요 아빠! 이건 농담이 아니었군요. 이리 오셔서 절 가슴에 포근히 안아 주세요. 하지만 너무 힘을 주진 마세요. 유리가 깨지니까요. 사물의 특성이란 이런 거지요. 즉, 자연적인 것에겐 우주 공간도 좁지만, 인공적인 것은 제한된 공간을 필요로 하지요. ----
병사들은 싸움터로 가도록 명하고, 처녀들은 무도장으로 데려가세요. 저는 세상을 좀 돌아보고 아이(i) 자(字) 위의 점 하나쯤은 발견해 내겠어요. 그렇게 되면 위대한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지요.
메피스토펠레스: 결국 우리는 자신이 만든 인간에게 끌려다니는 꼴이 되는 군. **
책에서 기술하는 인조인간의 모습은 조그만 유리관 안에서 곰지락 거리는 어떤 물질이니 오늘날로 치면 축소판 인큐베이터 안에서 숨 쉬는 어떤 생명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호문클루스는 파우스트의 꿈을 밝혀내고, 그가 이야기의 나라(그리스)에서 생명을 찾는 사람이라며 고전적 발푸르기스 축제의 밤으로 인도한다. 빛을 내고, 소리를 울리며, 날아다니면서 고대의 유명인사와 대화를 나눈다. 최상의 의미로 생성되고 싶다며 유리를 깨트리고 싶어 안달인 그를 두고 철학자의 망령 탈레스와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탈레스: 정신적인 특성에선 결여된 바 없지만 손에 잡히는 유용성이 전혀 없다는군. 어떻게 해서든 육체를 갖고 싶다는 걸세. --- 내 보기에 녀석은 자웅동체(雌雄同體) 같단 말이야.
프로테우스: 너(호문클루수)야 말로 진정한 숫처녀의 아들이구나. 존재해선 안될 것이 벌써 나왔으니 말이다.
호문클루스가 육체를 갖고 있지 않은 지적인 존재인 것, 그 지성이 몹시 뛰어난 것, 인간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 등이 요즈음 AI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감정을 가졌다는 부분이 다르다. 그의 마지막은 조개 수레를 탄 갈라테아(해신 네로이스의 딸)의 발치에서 반짝이다가 녹아내린 것이다. 사랑의 맥박으로 고동치듯 때론 강렬히, 때론 사랑스럽게, 때론 달콤하게 불타오르다가 찬란한 옥좌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AI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슈퍼피포 작가님의 소개 글을 통해 그나마 일반 상식을 채워가고 있다. 파우스트를 읽다가 인조인간 호문클루스가 등장하니 무척 반가워 그에 대해 요약해 보았다. 괴테의 지적 혜안에 놀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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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권『파우스트 2』 정서웅 옮김 에서 인용했습니다.
대문의 그림: ANNA Margit <Girl with a Red Ribbon> 1948, 헝가리 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