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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Mar 02. 2024

지향(志向)하는 자의 아름다움

지뉴 작가님 출간도서 『나는 아미입니다』를 읽고

 이 책은 무척 신선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신선한데 첫 번째 이유는 예상을 빗나갔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BTS 팬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목을 보고 당연히 덕후 생활을 담은 에세이인줄 알았다. 첫 장을 펼치니 소설이었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틀어 저자의 덕질을 기초로 한 자전적 픽션이려니 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등장인물의 어느 누구도 작가님의 모습을 담고 있지 않다. 주제도 기대를 벗어난다. 제목에서 엿보이는 ‘슬기로운 덕후 생활’아닌 것이다. 성장소설에 가깝다. BTS의 어록과 노래는 소재로 적절히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두 번째 이유는 문체가 깔끔해서이다. 군더더기 없는 묘사를 편애하는 나 같은 사람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는 분위기의 경쾌함에 있다. 40대 초반 여성 주인공들인데도 칙릿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명랑함, 위트 가득한 대화를 하고, 자녀의 스토리가 청소년 소설 분위기다.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자연스럽고 현실감이 있다. 하지만 대화 속에 사회 문제,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해학 등이 담겨있다. 톡톡 튀는 사춘기 심리묘사는 작가가 교사로서 현장에 직접 몸담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생히 펼쳐지는 장면도 있다. 혜진이 선루프가 젖혀진 차 위로 상체를 내밀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을 부르는 모습은 영화 속의 잊지 못할 명장면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아들만 키우고 이제는 빈 둥지인 내게 너무도 재미있게 다가오는 대화들이 많다.


‘우리 탄이들 보러 가는 길에 알람을 듣지 못해?!’ 혜진은 괜스레 힘을 주어 귓불을 쭉 잡아당겼다. ---


“우리 태형 오빠가 얼마나 멋있는데. 너 죽고 싶냐?!” ---


“이건 또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야?”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 문외한이 배운 것도 많았다. 잠실 경기장에서 자리에 따라 손톱크기 혹 면봉크기로 방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아미밤 페어링이라는 용어 등등. 유튜브에서 언뜻 봤던 와이어에 매달려 <유포리아>를 부르는 정국, <소우주> 공연 모습과 감동이 세세히 기술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브런치에서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엔시티나 넬의 라이브 공연 실황을 올리셨을 때 무척 재미나게 읽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책에서 BTS 콘서트 모습을 읽고 나니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티켓 경쟁이 장난 아니라지만 아이돌 그룹 공연의 생생한 열기를 현장에서 맛보고 싶어졌다. 창의력을 기르려면 낯선 곳에 가보라고 하는데 내게는 이런 종류가 가장 미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주인공들 중에서 수진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약한 것이다. 다른 두 사람의 우여곡절에 비해 글을 쓰는 여정이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다. 글쓰기가 사건보다는 독서나 머릿속 사유(思惟)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처음 쓰는 픽션으로 보기에 문체는 능숙하며 구성은 탄탄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화 장르에서도 벌써 어느 출판사 공모전에서 최종심까지 올랐다고 한다.

 책의 첫 장에서 저자는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서 덕질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고 적었다. 인간은 지향(志向)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이 생각났다. 삶의 지향 때문에 방황을 할 수밖에 없고, 방황하는 길목에서 새로운 지향(덕질)으로 위로받는 현대 덕후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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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펍과 영풍문고가 함께하는 3월의 독립출판 기획도서, 김진유 『나는 아미입니다』 출판사: 망고의 책장

방탄의 히트곡 <버터플라이>에서 가져온 듯한 나비 도안의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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