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 시저』의 브루투스
셰익스피어가 아니었으면 내내 브루투스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 같다.『줄리어스 시저』는 브루투스를 재발견하게 해 준 작품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권』 <줄리어스 시저> 편에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하여 셰익스피어를 못 마땅히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약점에 대해서는 그토록 깊이 통찰한 셰익스피어였건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인물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
그녀는 줄리어스 시저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썼다. 자신이 그래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전체『로마인 이야기』15권 중에서 시저에게 2권을 할애했다. 시저가 깔아놓은 기초 업적이 무척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다른 역사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나는 그녀의 영향인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고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시오노 나나미 여사와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영웅을 이렇게 표현해서야….”
이 희곡은 줄리어스 시저 개선식과 축제 때 불만스러운 사람들의 대화에서 시작하여, 암살 모의, 암살 전후의 움직임을 거쳐 브루투스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브루투스의 심리묘사가 많고 대의를 좇는 대쪽 같은 품성이 드러난다. 그에게 점수가 후해서 시저와 브루투스가 거의 동급인 것처럼, 이상주의에 투철한 두 사람의 충돌처럼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사실 모든 인간이 동등한 것은 맞지만.)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인지 시저의 대사들을 무척 오만하게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시저는 이렇게 말할 사람이 아니건만.
나는 저 북극성만큼이나 일관되고
확실히 고정되어 변치 않는 그 특성은
천상의 세계에도 비견할 데 없다네. (3막 1장 61-63 음모자들의 계속되는 탄원을 물리치는 대화에서)
시저의 유해를 바라보고 독백하는 안토니의 대사가 있는데, 실제로는 그때 애도할 여유가 전혀 없었고 두려워서 달아났다고 한다.*
오, 용서해 주시오, 피 흘리는 육신이여, 이 백정들에게 유약하게 처신한 이 몸을. 이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았던 최고로 고귀한 인간의 유적이다. (3막 1장 255-258행)
이틀간은 주모자들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건넨 안토니우스가 장례식에서 상반된 연설을 한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 암살자를 향한 분노를 지피는 그 추도사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창작이다. (내용이 전해오지 않음) 이 명대사 때문에 [줄리어스 시저] 주역 배정은 안토니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브루투스가 주연 같다고 느끼지만)
줄리어스 시저를 제목으로 삼아 놓고 그의 훌륭함을 별로 표현하지 않은 채, 조연 정도의 비중만 주고 있으니 독자로서 뭔가가 언짢았던 것 같다.
단테는 신의(信義)에 대한 배반을 가장 큰 죄로 여겨 브루투스를 지옥 깊숙이 배치했다. 승자의 스토리인 일반적인 역사는 브루투스를 시저를 해한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약간의 중요감만 부여하여 묘사한다.
셰익스피어는 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플루타르코스의 영향을 받았다 하여 그 『영웅전』을 살펴보았다. 읽고 보니 브루투스는 암살에 가담한 행위를 빼고는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좋은 평판 때문에 카시우스가 그를 모의에 끌어들였다고 한다.) 공화정을 지키기 위한 이상에 충실한 마음뿐만이 아니다.
브루투스의 경우 성품이 뛰어났기 때문에 군중은 그를 사랑했고 친구들은 동경했으며, 귀족들은 존경했고 심지어 적들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브루투스는 놀라우리만치 온화했고 마음이 넓었으며 모든 분노, 쾌락에 대한 욕구,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나아가 브루투스가 명성과 호의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그의 원칙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적(敵)이었던 브루투스를 칭송하는 안토니오의 고별사는 눈부신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흐름이 맞는다. 옥타비우스도 그의 명예를 지켜주려 애썼다 한다.
이 사람이 그들 중 가장 귀한 로마인이었다.
오직 그만 공적(公的)이고 정직한 생각에서
모두의 공익을 위하여 한패가 되었다.
그의 삶은 고귀했고 인성은 완벽하여
자연의 여신조차 일어서서 온 세상에
‘이게 사람이었다.’라고 했을 것이다. (5막 5장 68-75)
나는 아직까지 줄리어스 시저라는 인물에 푹 빠져 있지만.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고서, 브루투스도 그 시대 비운(悲運)의 한 영웅으로 안타까움과 함께 기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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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4권:줄리아스 시저』 한길사 1996
** 『플루타르크 영웅전 6권』 이다희 옮김, 휴먼 앤 북스 2012
셰익스피어 전집 4권, 최종철 옮김, 민음사 2014
대문 사진: 포로 로마노(Forum Romanum)
photo by Lambs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