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전쟁』을 읽고, 최재운 작가님
1. 들어가며
장강명 소설가는『인간 없는 전쟁』을 가리켜 “최근 몇 년간 이보다 더 무섭고 소름 끼치는 책은 없었다”라고 했다. 나도 읽는 내내 오싹해서 이열치열의 반대 이냉치냉(以冷治冷)을 맛보았다. 브런치 대상 수상작인 『AI, 인문학에 묻다』와 짝을 이루는 속편처럼 느껴진다. 지난번이 역사와 함께 AI의 개괄적인 소개였다면 이번에는 AI가 실전에 사용된 용례를 소상히 펼치고 있다. 그 실전이 전쟁터였기 때문에 AI가 인간의 삶 & 죽음에 얽힌 철학적인 사유와 함께.
작가님은 마니아층의 관심만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 든 중년 여성도 푹 빠져들었다. 부제부터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기계의 등장>이다. 영역이 영역이니 만큼 -전장(戰場)이라는- 흥미로운 것인지, 전문가가 인문학적 배경과 필력을 갖추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전쟁과 전쟁사와 드론에 대한 기초 상식이 부족하던 터에 상당한 보충이 되었다. (AI에 대한 일반 지식도 1차 심화 과정을 수료한 듯한.)
많은 예화가 바로 엊그제인 2025년의 것이니 얼마나 따끈따끈한지.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이스라엘 하마스의 대치가 현재진행형이어서 그럴 것이다. 뉴스에서 단편적으로 접한 모스크바함 격퇴, 크림대교 격파, 러시아 전차군단의 차단 등등 이야기를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다시 만났다.
우크라이나전(戰)에 거대 기업 팔란티어가 도움 준 것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개전 초기부터 깊숙이 함께한 것,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서비스 지원에 대한 세세한 일화를 알게 되었다.
작가님은 어려서부터 전쟁사와 무기 덕후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최신 전투기나 미사일, 항공모함, 잠수정들을 척 보기만 해도 역사와 나라와 명칭이 술술 나온다. 전공 지식과 열정적 덕질이 만나면 이렇게 매력적인 책이 탄생하나 보다.
도대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전쟁은 왜 나의 기억에는 깜깜한 것일까? 1994년과 2020년 두 차례 있었다니 내 성인시절의 일인데 가물가물하다. 반면에 작가님으로서는 어린 시절인데 샅샅이 꿰뚫고 계시다.
책을 읽고 나서는 저자의 당부처럼 AI 현황 파악을 열심히 하자는 다짐을 했다. 우리나라 방위산업에서 민간 생태계가 키워져 중소 방산업체, 스타트업이 잘 육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2. 책 속에서
## 다큐멘토리를 보는 듯 긴박하고 흥미진진하다.
*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군이 활용한 터키제 바이락타르 TB2 드론이 러시아 기갑부대를 상공에서 급습한 이야기는 스릴 만점이다. 눈에 띄지도 않는 ‘벌레’한 마리가 거대한 철갑괴물을 무력화시키며 모스크바 순양함까지 격침시킨다.
* 스파이더 웹 작전: 4000킬로 이상 떨어진 러시아 내륙 공군기지의 TU-22M3 백파이어 전략 폭격기 40여 대를 AI 탑재한 드론으로 파괴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비행기의 모습을 AI에게 학습시켜 가지고.
* 2025년 4월, 7800만 달러의 초고가 전자전 장비 보리소글렙스크-2를 값싼 드론으로 명중시켜 가격격차의 극단을 보인다.
* 30달러짜리 IED (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도 한몫을 한다. 이라크전에서 미군 사망자의 48%가 IED로 인한 것이었다. 씨우려는 의지와 난관을 극복하려는 인내심이 첨단무기를 능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 AI 전(戰)의 긍정적인 면을 읽으니 마음이 놓이다.
목숨과 정서적인 면에서 병사 보호 측면이 있었다. 로봇이 대신 죽어 병사들은 살아 돌아온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되어 병사의 마음을 지켜서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덜 겪고, 감정이 빚어내는 참상을 방지할 수 있다.
AI를 제대로 통제하고 국제법적 책임 체계를 갖출 수만 있다면, ---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윤리에 따라 움직이는 AI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다. 강간등 보복이나 복수의 위험이 없으므로.
## 부정적인 면을 읽고서는 무거운 생각에 잠기다.
* 할루시네이션으로 자신 있게 틀리는(그럴싸하게 틀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 AI 기술의 편의와 정확성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인간은 자기 자신의 판단력과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 (자동화 편향) AI 가 틀렸는데도 그대로 따라 버리는.
* AI가 사람을 죽였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전쟁상황에서 발생한 AI 피해에 대하여 책임 공백이 존재한다. 윤리적으로도 연민은 민간인 살상을 막아주는 핵심적 안전장치인데 로봇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래서 “생사여탈의 결정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숙고하는 인간의 몫이어야 한다” 는 전쟁윤리가 떠오른다.
* 전쟁이 게임처럼 느껴져 전쟁 개시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첨단 기술이 도입된 현대의 전쟁은 점차 게임 플레이처럼 추상화되고 있다. --- 지도자들이 군사행동을 훨씬 가벼운 선택으로 여길 수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분쟁에 휘말리는 빈도가 늘고 전쟁의 만연화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 전장은 자율 머신과 데이터의 각축장이 되고 있으며, 디지털 도구의 사용에 능숙한 세대가 앞으로 전쟁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이제 게임만 하는 아이들을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야 하나보다. 화면 분석력이 뛰어나 장차 커서 훌륭한 드론 전투 사령관이 될 수도 있겠으니.
* 통제권 상실의 가능성, 그 공포와 마주하고 있다. AI 가 명령을 거부하거나 오작동하거나 독자적으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AI의 능력이 향상될수록 통제 불능의 위험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하니 아찔한 마음이 든다.
## 전쟁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다.
21세기 전쟁의 진정한 무기는 총도, 폭탄도 아닌 알고리즘이다.
모든 시민이 센서가 되고, 모든 데이터가 무기가 되는 시대, 한편에서는 딥페이크가 진실을 가리는 안개를 만들고, 다른 편에서는 오픈소스가 모든 비밀을 벗겨 낸다. 거짓과 진실이 뒤엉킨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를 걸러 내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승패를 가른다.
드론의 두뇌가 AI이다 보니 AI 장군과 AI 장군이 맞붙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때 생기는 새로운 전략과 양상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인간이 개입할 입지도 적을뿐더러.
DARPA* 가 수만 번 시뮬레이션으로 강화시킨 전술 알고리즘이 드론의 두뇌가 되고, 컴퓨터 비전이 눈이 되며, 분산형 머신러닝이 집단 지성을 만든다. AI가 수백, 수천 대의 드론을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게 한다. 하늘을 뒤덮는 기계 벌떼.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전쟁의 얼굴이다.
AI는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이라는 요소까지 극한으로 활용한다. 공간측면에서 AI는 ‘다 영역 동시 작전’을 구사한다. 육해공은 물론 우주와 사이버 공간, 전작 스펙트럼까지 모든 영역에서 동시에 작전을 펼친다.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복잡도의 조율이다.
## 안전한 AI를 위한 원칙을 만드는 그룹이 있어서 휴, 안도하다
멈출 수 없는 AI 열풍, 거대한 자본의 질주 속에서도 안전함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세 가지 방어선을 구축하며 안전함을 추구한다고 한다. (이 방어선을 모든 AI 개발자가 명심하여 수호한다면 참 좋겠다.)
정렬: AI의 목표와 행동을 인간의 가치와 일치시키는 것
추적관리: AI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지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
인간 감독과 AI자율성의 균형 사이에서 최선의 조치를 취하는 것
저자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인류가 잘 길들였듯이 AI라는 새로운 불도 우리의 선택으로 잘 길들여 보기를 제안한다. AI의 현주소는 무서울 수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에는 독자의 두려움을 의식한 듯 달래는 말로 맺었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의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의 대사를 빌어서. 그래도 으스스 서늘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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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a(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 고등연구 계획국)
『인간 없는 전쟁』최재운 지음, 북트리거, 202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