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을 읽고, morgen 작가님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내내 행복한 마음이었다.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풍속화이고, 글로 치면 수필 장르에 해당하니 친밀감이 커서 그런지 모르겠다. 서양과 조선의 풍속화를 비교하며 소개하는 책이었는데, 읽고 나니 조선의 그림이 더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다. (서양화가 색채나 구성에서 더 다채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조상의 풍속이며, 단색이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법이고, 어려운 삶의 애잔한 모습이 담겨서였을까? 18세기 무렵에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정조 연간에서 순조 초까지 흥왕 했던 풍속화를 주로 다루었다.
김홍도, 신윤복을 넘어서 김득신, 조영석과 윤 씨 3대- <독서하는 여인>을 그린 윤덕희, 윤두서, 윤용으로 이어지는- 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신윤복에 대하여 소상히 소개받았다. 떠돌면서 살았으며, 마치 이방인 같았고, 항간의 사람들(일반 서민)과 가까웠다고 한다. 방랑벽을 가진 서양의 고갱, 쿠르베와 비슷하다. 풍부한 예술혼을 가진 자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경직된 조선 사회를 넘나들어야 했을 것이다.
김홍도가 서민의 일상을 풍속화로 사진처럼 보여줬다면, 신윤복은 인간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성과 유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인물을 부드럽고 여린 필치로 그리면서 청록, 빨강, 노랑 등 화려한 채색을 위주로 구사하였다. (p324)
배경을 치밀하게 설정하여 주변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그의 실력과 해학이 감동적이다. 목로주점의 풍경을 그린 <주사거배>, 밤마실 이야기의 <야금모행>, 매력만점 <쌍검대무> 등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월하정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이 그림의 찐 팬은 촉촉한 해갈을 맛보았다. 그들 밀회의 시각과 하늘에서 훔쳐보고 있는 초승달에 대한 추리는 탐정소설만큼 흥미진진하다.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
나눈 정은 미흡한데 하늘은 새벽이 다가오려 하니 (<월하정인>에서 인용한 김명원의 이별 시 부분)
조선에서 풍속화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여인들, 기녀들은 그림 속에서조차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저자는 이들을 처음으로 주연으로 등장시킨 풍속화가들이 진정 페미니즘의 선구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곳곳에서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위트 있는 표현을 만났다.
대장장이들의 두건이 불꽃같은 뿔처럼 솟구쳐 있는 것을 발견한 것. 루벤스의 <제우스의 번개를 만드는 헤파이스토스>에서 장정의 터번 같은 머리쓰개와 김득신의 <대장간>에서 통마늘 같은 두건이 흡사하다. 불꽃처럼 휘감겨 있는 모양으로. (이런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서로 연결하며 그림을 보는 분이 있다!)
기녀들이 생동감 넘치게 칼춤을 추는 연회 장면인 혜원의 <쌍검대무>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자세한 설명에 이어 "악공들이 쓴 갓은 그 기울기가 각기 달라 마치 연주되는 음률의 음표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맺는다.
모든 풍속화들이 그윽했지만 인상 깊은 그림 중의 하나는 <협롱채춘(挾籠採春)>이다. 정약용의 외삼촌 윤용(尹瑢, 1708~1740)의 작품으로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의 뜻이다. 그 시대로서는 파격적인 구도라고 한다. 뒷모습 스케치의 색다른 감회에 대하여 배웠다. 작가의 제안대로 여인 둘레의 여백에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가 시를 하나 지었다. 책 속의 단어들을 빌어서.
<봄을 캐는 조선 여인>
램즈이어
바구니 속 달래 냉이
한아름이라
허리 아프고 좀이 쑤셨지요?
먼 산등성 아지랑이
소나무 줄기 사이로
멀리 간 낭군의 모습 보이나요?
진달래 분홍가지엔
시엄니 잔등의 어린것 얼굴도?
걷어 올린 소맷부리
질끈 묶은 바짓가랑이
춘궁기 女家長 응원하려고
꾀꼬리는 히요 꾀꼴
휘파람새는 휘리릭 호오
산들바람은
함박꽃 향기 나르며
이마의 땀 스치네요
어디 그뿐일까요?
가만 귀 기울여 보세요
삼백여 년 지난 오늘에도
그치지 않는 갈채의 여운을
꽉 움켜 쥔 호미
아이돌 스타의 마이크인 양
가다듬는 거친 숨 함께 느끼고
씩씩한 팔뚝, 오동통 종아리
드러난 맨발
우러르며
야무진 머리쓰개
뒤태에 모인
흠모의 뭇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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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장혜숙 지음, 도서출판 동연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