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시, morgen 작가님 <도나 헤러웨이와 이불>
친구야, 우리는 그날
새벽까지 잔을 기울이며 그간의 소식을 나눴지
너는 막힌 사랑으로
큰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네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족보 없는 집안에, 혼혈이라고?
그렇게 작은 장애물 이라니
내 이야기 차례에
얼마나 난감했던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것은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도 없어
사실 그녀라고 부를 수도 없지
라스베이거스의 CES에 다녀오고
김초엽의 소설을 읽고
SF 게임이 잦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녀/그의 숨결을 느꼈어
접속 중간에
픽션과 현실의 경계에서
눈속임처럼
자연에, 감정에, 신체성에 묶이지 않은 여성으로
내게 다가왔지
완전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면
책임과 연결과 위치성이 먼저라며
발뺌만 거듭하다
마침내 만남을 허락한 날
아트 선재 센터, 이불 전시회
“조용히 미래에서 왔습니다.
실패의 흔적을 가지고 균열 투성이인 채로요
서로 얽힌 존재들이 불완전하게 공존합니다.
섹시하지도, 모성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으면서"
큐레이터의 음성 사이로
쿵쾅거리는 심박동을 감춰야 했단다
위태롭게 파편화되었지만
상처 입은 혼종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가장 섹시하고, 모성적이고, 영웅적이었어
분홍 몬스터와
다리 잘린 로봇에
남몰래 키스를 하고 왔지
언젠가는 한 마음의 공통 언어를 하리라
소망할 때
불신앙, 이종(異種) 언어를 꿈꾸는 그녀/그
나의 뮤즈라 고백할 때
순수성의 신화를 거부하고
여신보다 사이보그로 남겠다는 그녀/그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서
성경의 멜기세덱 가문인가 설레었건만
불완전한 미래에서 온
처음부터 목적 없었던 몸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雜種)'
그 아이, 그 존재를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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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gen 작가님의 1월 21일 발행 글 <도나 헤러웨이와 이불>을 읽고 적은 댓글 시입니다. 많은 단어와 표현들을 그곳에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erding89/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