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과 소녀

댓글시, 호랑 작가님 <겨울이 아니면 이 바람을~>

by 램즈이어

내 기한이 다하는 오늘

소녀도 그것을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흑백 자작나무 줄기 사이로

감청색 내 모습 그려 놓았네

“얼마나 기다려온 촉감인가?

뺨을 훑는 차갑고 명징한 공기!"

나를 이렇게 맞는 것도 처음이라

새치가 많아졌다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래도

나의 백 년 세월 동안

처음 만났던 그 모습뿐이니

손에 쩍 달라붙던 문고리에

눈이 둥그레지던

동지 아침의 소녀

서향(瑞香)으로 준비한

서울 마실 날 저녁엔

내가 달아 날 새라

꼭 포옹하며 속삭였었지

“이제 살 거 같아”

은파공원 프러포즈는 성공적이었으나

마지막 문장을 놓치고 말았다

"Will you marry me?"를

그 아침의 하얀 호수는

백조들이 내려앉은 예세닌의 벌판보다

더 조용하고

더 포근했건만

시리고, 예리하며, 칼날처럼 파랗게

어릴 적 눈보라 세팅으로

거칠게 차려입은 나

맨 볼 부비며 기뻐했는데

알쏭달쏭 그 마음

알 수가 없다

“바람아! 더 힘차게 불어라.

내린다는 눈 모두 가지고 아주 먼 곳으로 가거라.”

철석같이 순종했건만

이른 새벽 두 눈 껌벅이며

흰 눈을 아쉬워하고

사람이건 바람이건 그 앞에서

허당이 되는 것은

폭군이 순한 양(羊)되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 밖에 없는 것인데

겨울이 축제로 변하는 것도

사랑 아니면 턱도 없건만

소멸의 타임 다가오는

내 얼굴 보며

낯설다

숨을 고른다

봄으로 손을 …

엉뚱한 애기만 하니

겨울 소녀는 아직

내 사랑을 모르는 걸까?


---

호랑 작가님의 1월 20일 발행 글 <겨울이 아니면 이 바람을 어디서 만날까?>를 읽고 쓴 댓글 시입니다. 많은 단어와 표현들을 거기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qkfkagksmfwlrl/25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