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짓고 사랑을 지어내는

안신영 작가님『엄지발가락의 자유』를 읽고

by 램즈이어

손으로 펜을 쥐어 (컴 자판을 두드려) 글을 짓고, 바늘로 천을 이어 사랑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다. 제목 “엄지발가락의 자유”는 내면의 소리에 대한 은유일 듯싶다. 움츠렸던 엄지발가락이 양말을 뚫고 자유로운 날개 짓을 하는 것처럼 글쓰기를 통해 비상을 하고 싶다는. 그동안 브런치를 통해 작가님의 여러 글을 읽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구름처럼 자유롭기를 꿈꿨다는 것, 소풍날 눈부신 햇살 아래 첫 글짓기 상을 받았던 초등 시절 등.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 온 감수성이라 문장들이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문학의 향기를 풍긴다.

쑥떡을 먹으며 며칠 동안 나는 연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쑥떡! 쑥떡!

## 네 세대를 이어오는 사랑의 교향곡

아들만 있는 사람으로서 곳곳에 등장하는 두 딸과의 부대낌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마음 찡한 손녀 이야기에다가 그윽한 친정어머니의 추억도 담겨 있다. 4 세대를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아닐 수 없다.

보따리를 하나씩 풀 때마다 그 속에서는 음식이 아닌 기억이 위로가 그리고 사랑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의 보자기엔 언제나 물건보다 먼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시부모님의 식사시간을 맞추느라 종종걸음으로 살아왔던 대목에서는 동지애를 느끼고.


## 위로를 받고, 존경의 마음을 갖다

여러 번 넘어지고, 발을 다쳐 수술하고, 무릎 치료를 받는 스토리가 먼 애기로 들리지 않았다. (비슷한 일을 종종 겪으므로) 담담히 감수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보이스 피싱 등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 과정을 견디어 온 작가님이 진정 매화처럼 느껴졌다.

삶은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견뎌낸 날과 나눠 준 마음, 버티고 다시 일어선 순간들로 완성된다.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

늦은 나이에 겪은 이 아픔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었다. 내 삶은 이제 다시 시작된다. 겨울을 견딘 꽃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 사랑을 짓는 경이로운 손

어느 봄날 어머니가 매 준 스카프를 바람에게 날려 보낸 어린 소녀는 자라서 사랑의 바느질을 하게 된다. 연로하신 엄마에게뿐만 아니라 둘레의 벗들에게까지 하염없이 머플러를 만들어 주는. 이 챕터를 읽고서는 그 장면들이 눈에 선하고 계속 마음속에 펼쳐져서 시로(작가님 책의 단어도 빌어서) 표현해 보았다.


<소녀와 스카프 1>

램즈이어


새싹과 아지랑이 증인 삼아

꽃샘바람 둘이 내기를 했네

오십 년 후 멋진 세상 만들기

봄바람

민들레 씨앗을 100킬로 까지 퍼트렸지

이 벌판은

노란빛 만발한 민들레 마을이 될걸?

봄바람

단발머리 소녀 스카프를

시간 속으로 날려 보냈어

어머니 한숨이 미안하지만

장차 이 아이가 크면...

빌딩 숲 아래

겨우 싹튼 몇몇의 민들레

공해 속에서 살아남 뿌듯해하고

만년 소녀 손 끝에서

계속 탄생하는 스카프

봄꽃의

다채로운 색깔 노래하네

<소녀와 스카프 2>

워런 버핏과의 점심에

낙찰되었다고

우쭐한 사람을 보았지만

그 행사 종료 후

더 자랑스러운 낙점이 생겼습니다

브런치 대상(大賞) 경쟁이 치열해서

수상작은 영광을 얻습니다만

더 영예로운 상(賞)을 알고 있습니다

백만 불 이상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어

사모하지 않을 수 없는

머플러에는

소녀의 50년 기다림이

녹아 있습니다

고라니, 오리, 백로의 응원과

탄천 노을빛의 감성

능소화의 열정도 담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소녀가 짓는 스카프는 당신 맞춤입니다

당신을 떠 올리며

당신의 기쁨을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색과 문양으로

바늘 한 땀 한 땀

기도를 싣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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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영 『엄지발가락의 자유』 펴낸 곳: 유페이퍼, 2025 ebook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12343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