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라에서 생긴 일

morgen 작가님 [생각은 언제 눈치를 닮아가는가] 댓글 동화

by 램즈이어

옛날 옛적 풍요로운 생각 나라에 아리따운 공주님이 살고 있었다. 공주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이웃의 뭇 왕자들이 결혼을 청하였는데 어느 날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나타났다. 눈치 왕자라고 불리 우는 그는 이미 다른 나라 사람들의 칭송도 담뿍 받고 있었다.

수려한 왕자가 예의, 성숙, 배려로 칭하는 세 신하를 거느리고 무난함, 적절함의 매너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귀족이건 평민이건 반하여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다른 유력한 왕자들을 따돌린 것은 그의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능력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공기를 읽으며 기류를 지배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화려한 눈치 왕자의 이면에 작은 소문들도 따라다녔다. 그가 거느리는 몸종 가운데 비겁함이라는 녀석이 왕자의 품격을 조금씩 훔치고 있다는 것. 확인되지 않은 결정적인 루머로는 왕자의 목소리가 처음에는 잘 들렸다가 어느샌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의 데이트에서 공주는 행복했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이상하게도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 왕자의 둥글둥글한 성품도 그렇게 지겨울 수 없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굴레에 감싸이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을 끙끙 앓던 공주는 아버지 몰래 그 나라의 이름난 현자(賢者)를 찾았다.


“차라리 서툴고, 직선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같은 공간에서 상처를 입을 텐데?”

“삐죽삐죽 모가 나더라도. 그쪽이 더 살아있는 셈이에요. 눈치 왕자가 다스리는 공기는 숨이 막히네요. 공기를 바꾸는 사람. 어디 없을까요?”


현자(賢者)는 브레인 숲을 소개해 주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솔직 왕자가 공주의 소원을 들어줄 거라면서. 그곳을 잘 헤쳐갈 수 있는 현미경이라는 요술도구도 빌려 주었다. 보디가드로 두 병사를 붙여 주며.

용감하게 길을 나선 공주가 숲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때 웅성거리는 몇 사람을 만났다. 숲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우리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억울한 일을 호소하네.”

“주름 골짜기 갈피갈피를 헤매다 사라져 버렸어.”

“죽었다는데?”

“우울, 희망의 옷을 번갈아 걸치고 밤새 어둠 속을 돌아다니던 걸?”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지만 공주는 현자를 믿기로 했다.

현미경을 의지해서 밤새 숲 속을 샅샅이 탐색하고 마침내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허름한 오두막집을 발견했다. 두 사람에게 문밖 보초를 맡기고 공주가 통나무 사이로 들어섰을 때.


“어서 오세요 공주님!”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인사에 깜짝 놀랐다.

훌륭한 그림이 걸린 회색 벽을 향해 뒤돌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로 건장한 청년이 서 있었다.


“당신이 현자가 말씀하신…”

“왕자라기보다 그놈의 눈치 보느라 마음껏 나서지도 못하는 겁쟁이올시다.”


뒷모습은 분명 어떤 거리를 암시하고 있지만 명랑한 자유로움을 내뿜고, 목소리에는 애정과 힘이 있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해져서 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뱄었다.


“휴~ 살았다.”

“괜찮겠습니까? 같잖은 꿈, 엉뚱한 상상, 모순뿐인 유치한 저 같은 놈.”


그의 목소리는 점점 확고해지고 공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만 쿵쾅거릴 뿐.

모든 것이 멈추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생생하게, 내부로 굳은 진짜 마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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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gen 작가님 2월 28일 발행 [생각은 언제 눈치를 닮아가는가]를 읽고 적어 본 댓글 동화입니다. 많은 단어와 문장을 그곳에서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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