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음, 질투와 썸 사이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by 램즈이어

저는 지금 이웃집 남자의 일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저희 이웃은 부자지만 우리 집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니 사이가 안 좋은 정도에서 더 나아가 거의 앙숙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어려서부터 그 집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는데 그네는 우리 집이 잘 나갈 때 덕 본 과거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쉴 새 없이 우리 집을 해코지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야비하고 잔혹한 사건이 많습니다. 부모님은 그네들에게 함부로 마음을 줘서는 안 된다고 거듭 당부하셨고 저도 그 집이 미워서 가까이하지 않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이웃에 대해 혼란스러운 마음이 생긴 것은 2년 전 일입니다. 어느 프랑스인 댁에 놀러 갔을 때였습니다. 이웃 가족은 프랑스인 댁의 대단한 환대와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고상한 집안인 것처럼 대우받으며. 저는 놀라서 이웃은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못 된다, 우리 집에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 아느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믿어 주지 않을 성싶었습니다. 저는 잠시 마음이 복잡했지만 이웃이 부자여서 그렇게 좋은 대우를 받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영국인 댁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이웃의 떳떳지 못한 과거를 귀띔해 주었습니다. 영국 댁은 이미 알고 있던 일이라 새롭지 않는다는 듯 반응했고, 그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쎄 제가 그 이웃집 아들과 최근에 소개팅을 했습니다. 문학소녀인 제게 멋진 문학청년을 소개해 준다는 독서회 스승님 주선이라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가볍게 만나 보라 해서 딱 한 번 만이라고 다짐하며 나갔습니다.

아, 이웃집 다섯째 아들, 다자이 오사무! 그처럼 솔직하고 참신한 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감성은 사람의 마음을 저리게 하더군요. 예세닌이나 보들레르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탐미(耽美) 가였고요. 무엇보다도 저의 의식 아래 생각들을 시원스레 표현해 주어 마음이 끌렸습니다. 대단한 재치와 예리함으로. 예를 들자면.

** 실용주의에 질식함

그런데 그것들이 뜻밖에도 실용적인 물건이었음을 스무 살이 다 되어서야 알고는 인간의 알뜰함에 가슴이 갑갑해지고 서글퍼졌습니다. (16p)

**‘존경받는다는 것’의 정의

거의 완벽에 가깝게 사람을 속이다가 어떤 전지전능한 자에게 간파당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죽음보다 더한 망신을 당한다. (26P)

** 사람들의 페르소나에 대한 관찰

서로 기만하면서도 신기하게 아무도 상처 입지 않으며, 그렇게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실로 눈부신,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의 삶에 충만해 있습니다. (p 30)

** 특별한 패션 감각까지 (이후 인용글 모두『사양』에서 p55)

나는 미처 몰랐다. 옷은 하늘빛과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몰랐던 거다.

‘박꽃 일기’라는 일기장 타이틀에서 천사처럼 순박한 그의 성품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을 못해 삶이 꼬여가는 중에도 사랑과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p109)


행복감이란 비애의 강바닥에 가라앉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사금(砂金) 같은 것이 아닐까? 슬픔의 극한을 지나 아스라이 신기한 불빛을 보는 기분. (p118)

나는, 나라는 풀은 이 세상의 공기와 햇빛 속에서 살기 힘듭니다. (p147)

살아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아아, 이 얼마나 버겁고 아슬아슬 숨이 넘어가는 대사업인가! (p136)


그가 자신의 형제들에 대해 얘기를 했을 때 다시금 놀랐습니다. 미움과 무관심에 까마득히 몰랐는데 이웃은 부자일 뿐 아니라 문예의 꽃을 피운 집안이었습니다. 여섯 아들 모두 큰 스케일에 뛰어난 감수성, 천재성으로 세상을 벙벙하게 만들고 있었다니…. 짓궂은 마음에 영화배우에 빗대 봅니다.

자신과 티격태격 싸우는 바로 위 형 야스나리는『설국』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그렸습니다. 선명한 수채화 필치로 고고한 세련됨을 풍기니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의 크린트 이스트우드 랄까?

오사무가 가장 좋아한다는 셋째 형 아쿠타카와는『라쇼몽』『코』등에서 문학예술의 최고 실력으로 종횡무진하여 <미션 임파서블>의 스파이 탐 크루즈를 연상케 합니다.

둘째 형은『무희』를 쓴 모리오가이인데 의학, 언어, 문학에서 내뿜는 중후함이 <카사 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입니다.

맏형 소세키는『도련님』『마음』에서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선보였습니다. 단정한 꽃미남 스타일이라,

<스파이더 맨>의 토비 랄지 <반지의 제왕> 올랜도 블룸쯤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장난꾸러기 동생 하루키를 두었는데 동생 역시 그 영특함이 형들 못지않습니다.

기성사회에 설 곳 없는 다자이 오사무!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 보다 더 절망적이고, <캐러비안의 해적> 조니 댑 보다 더 비상한데, 예술성마저 뛰어나니 어울리는 배우를 딱히 찾을 수 없네요.

소개팅 후로 제 마음은 이상합니다. 묘한 마음의 일부는 이웃집 아들들의 훌륭함 때문입니다. 부정하자니 객관성이 없고, 인정하자니 커다란 질투심이 밀려오네요. 저희 부모님 마음이 투사된 것이겠지요?

큰 부분은 그 집 다섯째에게, 그 사람의 치명적인 문장에 제 마음이 설레는 것입니다. 썸을 타는 것인지…. 부모님이 몹시 미워하는 이웃집의 5남, 사랑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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