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호의 괴물과
팔추어 구 안 가라즈단 (Fàilte gu An Gearasdan. Welcome to Fort William)
"와우. 이 요상한 환영인사!"
아마도 게일어인 모양이다. 역시 한국 요정님의 일처리는 빨랐다. 벌써 멀리 웅장한 벤 네비스 산이 버티고 있다. 저 거친 산등성이에서 누군가를 찾아….
하지만 중요 관광지라면 찍고 찍고 가야 하는 피가 흐르는지라. 얼른 포트 오거스터스에 들러 저명한 네스호의 괴물을 실물 영접하기로 했다. 마봉드포레 님이 챙겨준 극비 매뉴얼도 있으니까. 호수 둑 근처 바위산에서 염소들을 찾는다. 껑충껑충 뛰는 그들과 친해져서 사바사바 한다. 안개 짙은 오후로 날을 잡는다.
세상에 단 하나, 역사에 단 몇 회 그 신비한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설렜다. 우리는 한참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의 우상 로버트 번즈를 만나기 전(前) 이렇게 두근거려도 될까? 하여튼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 큰일이다. 이러다 미녀와 야수가 되남? 꿈 깨. 미녀가 못되니 그런 경우의 수는 결코 일어나지 않아. 이심전심인지 나의 애틋한 마음에 네시(Nessie)도 자신의 어떤 심정을 토로했다.
“나는 외로워. 바람도 쐬고 싶고.”
“관심 많이 받고 있잖아? 사람들은 너와 단 한 번이라도 만나길 고대해. 네 몸 일부라도 보고 싶어 안달인걸?”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소문이야. 진정한 내가 아니라고. 신비주의 코스프레? 이제 지겨워. 몇 백 년이면 족하지. 이렇게 내내 어두컴컴한 물 밑에서. 어흑.“
“만약 물 밖으로 나온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 내가 마봉드포레 님께 얘기해서….”
“내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며 사랑받고 싶고. 인기도 얻고 싶어. 그리고….”
네스는 뭔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 뭐?”
“영화에도 좀….”
“영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이나 영화 출연은 로망 중의 로망인가 보다. 마봉님께 재빨리 텔리파시를 쳤다. 마봉님은 좀 우려했다.
“괴물이라면…. 마스크 미인처럼 좀 가리는 게 나을 텐데. 모두 드러내며 사랑받는다? 글쎄.”
살아있는 것들의 바램에 마음 약하고 영화계에도 인맥이 두터운 마봉님은 2006년 네시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네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악역을 받았고, 이상하게 분장을 해야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1300만 명의 적을 만들고야 말았다. 제작자들은 어찌 그리 괴물의 입장을 단 한 톨도 생각지 않는단 말인가?
호수로 돌아 간 네시는 긴 침묵에 잠겼다. 그를 봤다는 사람은 더욱 없다. 신비주의야 말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임을 깨달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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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 작가님의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를 읽고 적어본 댓글 픽션입니다. 여러 정보와 표현들을 그곳에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