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 호의 괴물을 찾아! 보트 트립

그레이트 글렌 웨이 4일째 - 포트 오거스터스 추가 1박

by 마봉 드 포레
숙소에서 제공해 준 조식. 저 크루아상은 아줌마가 직접 구운 것임.

[ 8월 7일, 여행 25일째, 그레이트 글렌 웨이 4일 ]

Additional Night at Fort Augustus

숙소: 포트 오거스터스, 칼레도니안 하우스(Caledonian House)


길바닥에 뒹구는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보니 간밤의 강풍이 꿈은 아니었다. 이번 강풍으로 인해 포트 오거스터스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나 있었다.


던디 - 애버딘 구간 철도 서비스 중단: 철로에 쓰러진 나무 때문에

글라스고 - 오반 구간 철도 서비스도 중단: 위와 이유 동일

케언곰(Cairngorm -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크고 거친 고원 산악 지대 - 어느 정도로 큰가 하면 룩셈부르크보다 크고 서울의 약 7배)에서 최대 115 mph(185km/h) 강풍 관측

서해 칼막(페리 회사 - 스카이 섬 갈 때 내가 탔던 배도 칼막 꺼) 일부 구간 운항 중단

애버딘셔(Aberdeenshire) 피시 페스티벌 참가 중이던 배 전복되어 1명 부상(이런 날씨에 페스티벌을 왜 하냐)

루이스(Lewis) 섬 근처 석유 시추 장비가 강풍에 날아가 해안에 떨어짐(인명 피해는 없음)


강풍 관련 기사 밑에 누군가가 "이렇게 여름은 가고..."라고 댓글을 달아 놓았다.

포트 오거스터스의 옛 베네딕트회 수도원(Fort Augustus Abbey). 지금은 리모델링해서 Highland Club이라는 고급 숙박시설로 쓰이고 있다.

네스 호 보트 트립

포트 오거스터스가 관광지이긴 해도 동네가 작아 호숫가 산책하고 옛 수도원(현재는 고급 숙박 시설로 쓰임)이랑 유명한 계단식 갑문 열리는 거 구경하고 나면 할 일은 네스 호 보트 트립 정도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호수 파도가 너무 높아 일반 유람선은 1시간, 스피드보트는 30분짜리만 운항한다고 했다.


스피드보트 대기실에 가니 우주복 같은 슈트를 주며 입으라고 했다. 그 위에 구명조끼랑 고글을 장착했다. 약 10명 정도의 사람을 태우고 보트는 출발했다. 바나나보트 같은 거면 곤란한데,라고 생각했는데 슈트가 워낙 훌륭하게 방수가 돼서 중간에 물보라를 여러 번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쓰고 있던 후리스 모자와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가 좀 젖은 것 말고는 거의 젖지 않았다.

네스 호 보트 트립 선착장

보트를 타니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물에 빠지면 헤엄쳐서 나올 생각 하지 말고 구명조끼의 줄을 잡아당겨 공기를 채우고(비행기 좌석 밑의 구명조끼처럼 줄을 잡아당겨 공기를 채우는 조끼다) 그냥 둥둥 떠서 주변 경관을 즐기세요.

누군가 물에 빠지면 그 자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구조할 사람에게 가르쳐 주세요. 물 위에는 표식이 없으니까요.

네시(Nessie)를 보면 당신은 럭키(아놔 그놈의 네시 타령 진짜)! 바로 사라지기 전에 언능! 사진 찍으세요.

네시는 수면이 잔잔하면 잘 안 올라오니까 오늘같이 거지 같은 날씨에는 아마 나올 거예요(그만해...).

끝이 안 보이는 네스 호의 모습 - 진짜 크다

괴물이 네스 호에 사는 이유

날씨가 구려서 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멋있진 않았지만 네스 호는 무지하게 컸다. 네스 호가 어느 정도의 사이즈인가 하면...

길이 37km - 인버네스(Inverness)에서 남서쪽으로 그레이트 글렌 단층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음

최대 수심 230m

부피 약 7.4 km³ - 잉글랜드와 웨일스 전체의 호수와 저수지들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음. 면적으로는 로크 로몬드가 더 크지만 담수량으로는 얘가 최고임

이탄(피트) 토양에서 나온 유기물이 많아 물 색이 파랗지 않고 검은빛을 띰

그래서 물속 잘 안 보임 - 네시가 숨어 살기 좋음

네스 호는 호수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크고 또 크다. 그래도 어지간한 날씨가 아니면 항상 배들이 떠 있으니 괴물이 산다 해도 발견 안 되기가 힘들 것 같다.

네스 호숫가에 사는 염소들

보트 트립은 와 호수 개 크다! 말고는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다. 호수호수호수 산산산산 호수호수호수 산산산산 사진 찍다 지겨울 때쯤 호숫가에 염소 몇 마리 풀어놓고 키우는 애들이 나타났다. 누군가 네시를 보았다면 아마 얘네들이 보았을 듯.


북극권(Artic Circle)

보트 트립이 끝나고 갑자기 날씨가 개면서 해가 비쳤다. 동네 개들이 갑자기 모두 뛰어다니기 시작했다(개들도 해를 보면 좋은가 보다). 동네 뒷산에 있는 폭포나 보러 갈까 하고 짐 챙기러 숙소로 들어갔더니 갑자기 창 밖에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놔 이놈의 변덕 죽 끓는 날씨... 주인아줌마가 빨래를 갖다 주면서 자기 가족이랑 친척들은 텍사스, 샌프란시스코, 페루, 캄보디아, 태국에 살고 있는데 자기만 이따위 날씨에 산다고 투덜거렸다.


"3월에 온 손님들은 너무 추워서 18겹이나 옷을 껴입고 다녔어. 그래도 그때 운하가 꽁꽁 얼어붙어서 경치는 좋았지."


운하가 죄다 얼어붙으면 경치가 아름다워지는 모양이다. 8월인데 날씨 계속 이러냐고 묻자 아줌마는 "여기는 북극권에서 600마일(약 1,000km)밖에 안 떨어져 있는걸. 당연히 쌀쌀하지."하고 웃으며 가 버렸다.


쌀쌀?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쌀쌀? 그나저나 북극권이라니 지리 시간에 듣고 처음 듣는 단어다. 뭐가 북극권일까? 일단 무술 이름은 아니다.


북극권은 무엇인고 하면 백야(여름에 하루 종일 해가 안 짐)와 극야(겨울에 하루 종일 해가 안 뜸)가 처음 발생하는 위도가 바로 북극권이다. 66.56° N에 해당한다.


서울은 우리가 대충 아는 대로 37.6° N이이고 포트 오거스터스의 위도는 57.14° N이다. 북위 57도면 알래스카 남부보다 더 북쪽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렇게 추운가. 8월 초면 한국은 연이은 폭염으로 사망자 나오는 계절인데 여긴 있는 옷을 죄다 껴입어도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동네 구석에서 바라본 네스 호와 맞은편 언덕들

강풍주의보는 오늘 자정까지였다. 바람도 센데 5분만 밖에 나가 있어도 쫄딱 젖을 것처럼 비가 많이 온다. 그러니 동네 구경 잠깐 한 것 말고는 한 일도 없는 상태로 오늘은 마감이다. 그나마 방에서 운하가 보이는지라 창가에 앉아서 영국 여행하는 사람답게 홍차에 우유를 부어 마시며 창가의 히터에 몸을 바짝 대고 앉아 있었다.


이제는 방 안에서 레깅스에 후리스까지 입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히터 가까이나 가야 겨우 온기가 느껴지는 싸늘한 방안 공기에도 적응이 되어 간다. 이래저래 벌써 여행 일정의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포트 오거스터스의 계단식 갑문에서 갑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배들
갑문 양쪽 수위가 같아지면 이렇게 갑문이 열린다
이렇게 갑문 사이에 배들을 가둬(?) 놓은 채로 수위를 올려 다음 갑문과 수위가 같아지면 갑문을 열어준다

토요일 연재
이전 20화칼레도니아 운하를 따라 3보 1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