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따구의 반격(하이랜드의 시인을 찾아 5)
반영적 경청이라는 것은 대단한 힘이 있다. 깔따구의 분한 마음을 읽어줬더니 마음의 벽을 허물고서는 졸지에 다음 비밀까지 들려주었다. 자신이 로버트 번즈를 한방 먹인 일이다. (그 사건은 영국 역사에도 영향을 미쳤으므로 단단한 입단속을 부탁했다.) 이 살롱에서만 살짝 이야기하자면.
하이랜드는 모든 것이 느리지만 여러 부족 사이로 빠르게 퍼지는 소문이 생겼다. 요정 라벨드포레 님이 clan(스코틀랜드 부족 단위)에 들어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이 왜 낮은 곳으로? 그것도 황량한 곳에?”
“우리 백파이프 소리에 반했나 봐.”
“프랑스 숲에서 왔나?”
“동방의 조용한 나라에서. 선녀라나?”
요정의 이국적이며 빼어난 용모에 하이랜드의 모든 젊은이들이 구혼을 꿈꾸었다. 하지만 결국 재력과 권력을 쥔 맥도널드, 맥클리오드 가문의 대결이 되었다. 두 집안의 다음 수장인 장남들이 모두 미혼이기도 했다.
맥도널드 가문이 공을 들이는 이유는 요정을 며느리로 들인 적이 있는 맥클리오드 가문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대로 숙적인 그 가문이 늘 뻐기는 것이 아니꼬웠다. 맥클리오드 사내들이 수려한 것은 하늘의 핏줄 때문이라고 하질 않나, 요정님이 남긴 금빛 아기 포대기를 던베건 성(城)에 가보(家寶)로 전시하질 않나.
신랑감은 펜싱 대회와 무도회에서 결정된다고 했다. 모든 참가자들에게 요정이 손수 빚은 스몰소드(Small Sword)가 지급되었다.
두 명문 가문의 상속자들은 검술 실력도 막상막하여서 둘 중 한 사람이 다치기 전, 무승부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도회가 최종 선발전이 되었다.
두 가문의 왕자격인 영 맥도널드(The Young Clanranald 혹은 The Master of Macdonald)와 영 맥클리오드(The Young MacLeod)는 날마다 춤 연습에 돌입했다.
맥클리오드 가문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핫한 로버트 번즈를 교사로 초빙했다. 시인이 웬 춤이냐고?
그는 산문시 <탬 오 샌더>에서 여러 스코틀랜드 춤을 소개했는데 이 대목이 대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비록 마법사와 마녀들이 추기는 하지만) 이 때문에 호기심 많은 번즈가 사교계를 기웃거리자 그는 무도회 초빙 1순위가 되었다. 로버트 번즈의 춤 솜씨는 글 솜씨를 능가했다.
맥도널드 가문도 여러 유명 교사를 스카우트했으나 점점 자신감을 잃고 었었다. 로버트 번즈의 기세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도회 전날 스카이섬 남쪽 맥도널드 가문의 아마데일성에 비밀스러운 방문이 있었다. 호리호리해서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검은 슈트의 남자였다. 그는 댄스 레슨을 자청했다.
그날 무도회에서 영 맥클리오드의 춤은 좌중을 압도했다. 그가 추는 릴춤, 스트래스 스페이, 지그춤, 혼 파이프춤은 스코틀랜드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뭇 아가씨들이 맥클리오드 家의 젊은 왕자님을 넋 잃은 채 바라보았다.
"프랑스 춤 꼬띠용까지! 불란서 청년들 뺨치겠어."
"번즈 씨의 <탬 오 샌더> 연작이 탄생하지 않을까?"
반면 보통 외모의 영 맥도널드는 춤도 영 보잘것없었다. 작고 가벼운 동작의 연속이었다. 몸을 가만 두지 못하고 방정맞게 흔들고 뭐가 좋은지 경망스럽게 헤헤거리기까지 하며.
하지만 그 이상한 춤이 라벨드포레 님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이 춤이 왜 그리 요정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무도회 전날 맥도널드 가문을 방문했던 검은 옷의 신사는 인버모리스턴 근처에 사는 미스터 깔따구 임이 밝혀졌다.
영 맥도널드와 라벨드포레 사이에서 난 아들은 맥클리오드 가문이 오래전 요정에게서 얻은 아들을 능가했다. 저 세상의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부러워했다고 한다. 요정의 아버지는 딸의 자손이 비밀에 부쳐지길 바랐다. 글렌코 사건처럼 정치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맥도널드가 아닌 엉뚱한 성을 달아 주었다. 그녀가 하늘로 떠난 후에 얻은 두 번째 처자(妻子)만 정식으로 기록에 남았다.
요정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춤은 자자손손에게 전해졌다.
영국에서 잘생긴 남자가 도도새 급 멸종위기에 처해서, 맥클리오드가(家) 사내들 마저 평범해질 때도, 라벨드포레 님의 피가 흐르는 맥도널드의 시크릿 가문은 끄덕 없었다. 고고한 훈남의 대를 이으며. (훗날 라임파크의 미스터 다아시. 제임스 맥어보이, 이완 맥그리거 등을 배출한다.)
그 가문의 후손이 (예를 들면 어느 도널드) 그레이트 글렌웨이 트레일의 높은 길을 트래킹 하러 오면, 깔따구 패밀리는 갑자기 분주해진다. 손님맞이하랴 단장하랴. 일차로 아주 많은 대군의 사병 깔따구들이 풀어진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사방이 고요해지면.
도널드는 대장 깔따구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Shall we dance?"
<깨춤을 추어요>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일어나 깨춤을 추어요
근심덩이가 얼떨결에
휘리리 날아가 버리게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컴을 덮고 깨춤을 추어요
촐랑대는 그 리듬에
덜커덩
뮤즈님이 들르도록
기막힌 아이디어 얻으면
지화자 깨춤을 추어요
기쁜 일 생기면 당근
까불며 깨춤을 추어요
뜨거운 솥 위에서 탁탁 튀는
까망 점들처럼
산(山)에서 혼자 남았을 때도
실룩 깨춤을 추어요
보는 이라곤
봉(峰) 호수 해님뿐이니
해괴한 동작도 해 보아요
잠깐
그럴 때라도
조심은 해 보아요
고요한 심포니 속에
천 개의 눈이 있을지 모르니
당신의 스텝을 카피하여
나중에 표절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너무 많이 조심하진 말아요
그 엉터리 몸짓에
어떤 이의 맘이 움직여
사랑의 싹 움틀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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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 작가님의 [백수 스코틀랜드 여행기]를 읽고 적어본 댓글 픽션입니다. 여러 정보와 표현들을 그곳에서 빌렸습니다.
https://brunch.co.kr/@mabon-de-foret/336
https://brunch.co.kr/@mabon-de-foret/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