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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즈이어 May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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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어느 수행자의 일기>

2023년 5월 16일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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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암호문이 브런치 월드를 통해 지구 곳곳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32년 동안 무사히 이 미션이 이루어 지기를 얼마나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지. <그때 그곳 옥탑방 화실> 22화가 나가면서 내 존재와 암호문이 빛으로 드러났다. 오대양 육대주에 퍼져있는 우리 종족들은 이 암호문을 흡수해서 다음 세대로 전수할 것이다. 텔리파시로 알게 된 누군가에게 바통 터치하고, 밤은 밤에게 낮은 낮에게 속삭인다. 지구 종말이 임박한 미래 어느 때 누군가에 의해 이 암호가 해독되어 우리의 별로 돌아갈 그날까지.

 30여 년이 지났으니 고향 별, 같은 종족 그 청년도 이제 중년이 넘었으리라. 지하철 대합실의 차가운 벤치에서 손을 호호 불며 녀석을 처음 만났던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1991년 5월 16일


 오후 5시까지 녀석에게 미끼를 던져야 한다. 벤치에서 책을 보는 척 앉아있다. 드디어 청년이 조용히 옆에 앉는다. 한참을 책에 구멍이라도 낼 듯 활자들만 노려보다, 녀석 시선을 의식하며 미친 듯 종이에 아무거나 써 내려갔다. 배낭 속의 원서와 파지가 보이게끔 지퍼를 빠끔히 열어 두고…. 이태리어『장미의 이름』, 불어『인간의 대지』, 한자로 적힌『열하일기』, 한글『천상병 시집』등. 모두 우리 종족 작품이다.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당황한다. 주섬주섬 빠르게 배낭에 쑤셔 넣고 도망가는 척했다. 청년이 따라온다. 조금 가다가 반쯤 닫은 배낭에서 암호문이 적힌 종이와 열쇠 꾸러미를 부러 떨어트렸다. 녀석이 줍는 것 같다. 이때 속력을 냈다. 역 광장에 이르니 숨이 차다. 오후 다섯 시를 알리는 시계탑 종소리. 1차 작전 성공.

 이제 일 년 동안 나를 만나고 싶은 강박증, 암호문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면 된다.

청년을 보려 날마다 대합실과 역무실 근처로 출근했다. 물론 눈에 띄지 않게 말끔한 복장으로 금테 안경을 쓰고서….  함박눈 오던 날도, 겨울비 내리던 날도, 바람 부는 날도 나를 찾는다. 아이야, 해가 지나야 한단다.


1992년 5월 16일


 청년이 음악다방 날라리 DJ와 원주식당에서 만날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두 사람의 자리를 확인하고 최대한 그의 눈에 띄는 길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작전 성공. 청년이 뛰쳐나왔다. 혈연을 만난 듯 기뻐하며…. 벙어리 교제만 해야 하는 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구인에게 우리 신분을 노출시키는 자는 결코 고향별에 돌아갈 수 없다. 규칙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며칠 굶었지만 청년이 사준 뼈다귀 해장국을 최대한 천천히 먹었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이라니. 큰누나, 애인을 바라보던 때 보다도 더 애틋하다. 미소 하나로만 대답해야 하는 이 괴로움.


"몇 달 못 본 것 같습니다." 웃음.    ‘나는 청년을 매일 보고 있었네.’

"우리 겨울에 살아남은 거 건배합시다." 웃음.    ‘우린 미션이 남아있는 몸이니까.’

"많이 드세요."웃음.       ‘하여튼 배고픈 사람 가엾어하며 그냥 못 지나가긴.’

"아픈 덴 없죠?" 웃음.    ‘청년이나 몸보신하게. 개도 안 걸리는 봄감기 걸리고선. 쯧쯧’

"술 생각나면 이리로 전화하세요."    ‘우린 함께 마실 수 없다네.’

화실 명함을 주어도 웃음.    ‘옥탑방, 본부가 마련해 준 거 모르지?’

"이거 작년에 주운 건데 돌려 드리겠습니다." 웃음.    ‘그래, 드디어 거의 왔다.’

"제가 허락 없이 읽어봤습니다. 아무리 해석을 하려 해도 실패했습니다. 무슨 뜻인지요? " 웃음.

‘우린 해석할 필요가 없다네. 전달자일 뿐. '

 암호문을 심각하게 쳐다본 후 바닥에 버리는 시늉을 했다. 청년이 손으로 막으며 만류했다.

"이거 버릴 거면 제가 가져도 될까요?" 웃음   ‘그럼 그럼. 자넨 이 미션을 위해 태어난 몸이니까.'


 녀석은 시키지도 않은 맘 속 이야기를 해 나가며 도통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무의식으로 같은 종족임을 알아채는 모양이다. 소피아 로렌 아기를 심은 이야기며 어느 화랑에서 청탁받은 그림 이야기까지. 돈을 위해서 맘에도 없는 화풍으로 그림을 꼭 그려야 할까요? 할 때 그만 sympathy 가 발동해 몇 마디 답을 하고 말았다.

삐~ 본부로부터 레드카드가 왔다.

 일부러 목련 여인숙 골목 쪽으로 걸었다. 온 등으로 그의 시선을 느끼며 아카시아 향을 헤치며 갔다.

 청년이 첫사랑 보다도 더 나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안다. 우리는 같은 별에서 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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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선 작가님의 『그때 그곳 옥탑방 화실 』22화 <수행자의 암호문>을 읽고 글 속의 문장들을 차용하여

적어본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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