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와서 생각하면.. 이렇게 까지 해야 했냐!!
젊음에게 미안할 정도로 비슷한 날을 살아내던 어느 날, 평소 관심이 있었던 교육강사에 지원했다. 강사가 되면 강의시간만큼 상담시간이 줄어 실적에 대한 부담도 낮아지기 때문이었다. 실적과 주변평가가 좋던 나는 무리 없이 합격했다. 늘 잘하고 싶었던 나는 강의 역시 최고가 되고 싶어서 커리큘럼부터 테스트까지 꼼꼼히 검토하고 준비했다. 그 결과 강사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아 강의과목이 점점 늘어났다.
강사업무에 익숙해져도 여전히 메인 업무는 상담.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구역감을 느끼던 무렵 리더로 승진했다. 개인은 충분히 인정받았으니 이제 리더로서 내 가치를 증명해내야 했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점점 회사에 집착했다. 내 생각은 배제한 채 회사의 지시라면 모두 수용하고 대부분 해냈다. 덕분에 상급자가 선호하는 리더였지만 일부 동료들은 생각 없이 예스만 할 줄 아냐며 비아냥 거렸다. 사실 비난은 크게 고려할 것이 아니었다. 기꺼이 나라는 존재를 지우고 회사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변화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회사가 내게 요구하는 건 성과가 잘 나오는 안정적인 조직운영이었다. 나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시간을 회사에 집중했다. 7시 30분에 출근해서 업무준비를 하고 밤 9~10시까지 마무리를 한 뒤 동료들과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고민을 나눴다. 거기서 답도, 위안도 얻으며 평일을 버텨내다가 주말이 오면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 타인의 마음을 얻는 방법, 부하직원들 다루는 노하우, 각종 코칭 관련 서적을 탐구했다.
그중 비중을 두고 읽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었다. 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코칭도, 상담도 결국 답은 사람이었다.
사람의 마음만큼 강력한 것은 없었다. 나는 구성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를 위해 내가 내세운 건 직원들을 향한 진심이었다. 상담사라는 직업을 부끄러워했던 지난날을 솔직히 고백했다. 누구나 도전은 할 수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서툴렀던 지난날도 기꺼이 꺼냈다. 열심히 할 의지를 가진 직원에게는 아침저녁으로 코칭과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다.
구성원의 생일이 되면 그 가족에게 엽서를 썼다. 아이가 있는 구성원이라면, ‘너의 엄마는 우리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엄마는 너를 사랑하듯이 회사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의 생일을 많이 축하해 줘라.’라고 썼고, 미혼 구성원이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훌륭한 딸을 두셨다며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썼다. 구성원의 가족에게 당신의 딸이, 당신의 엄마가, 당신의 와이프가 회사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내 직업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직원이 본인의 직업을 사랑하길,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 번 욕을 하는 고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길 바랐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이런 마음 하나하나가 전해져 우리 구성원들은 함께 동화되어 갔다. 마음만 동(動)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놀라운 상황을 경험했다. 여러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짜릿함. 지금 생각해도 전율이 생긴다. 그 경험이, 힘들어도 나를 자꾸 일어나게 했다. 리더로서 몇 년을 치열하게 살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여러 차례 들어왔다. 하지만 사람 속에서 일하는 재미를 알게 된 나는 상담조직에 남았고 많게는 100명이상을 관리하는 리더로 승진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여기까지만 하고 쉬엄쉬엄해야지 했지만 높이뛰기 선수가 점점 허들의 높이를 올리듯 ”더! 조금만 더!’를 외쳤다.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하고 싶다’로 시작했지만 회사에게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 완벽한 모습만을 보이고 싶었다. 회사는 곧 나였으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수순을 밟고 있었지만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때 그 공허함과 불안감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돌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에 나를 돌봐주지 못했다. 나를 외면한 채 회사에만 맞춘 삶은 스스로를 위태위태하게 했다. 이미 가득 차 있는 포클레인이 좀 더 많은 흙을 담기 위해 부들거리며 올라가다가 있던 흙마저 떨어트리는 격이었다.